시와 수필

나비도 무겁다 /박지웅

구름뜰 2012. 10. 11. 08:45

 

 

 

가구들이 트럭에 올라앉아 몸을 맞춘다

여기저기 끼어드는 불편들이 불편하다

 

거울은 담에 비스듬히 기대여

처음으로 제 살던 집을 보고 있다

집도 거울을 보고 있다

난생처럼 보는 몰골이 뒤숭숭하다

 

여자는 거울 속으로 들어가서

부지런히 무언가를 안고 나온다

아이가 거울에서 지구를 들고 나온다

방에 굴러다니던 지구는 불편하다

 

지구를 트럭에 실을 수는 없는 일

필요한 것은 지구가 아니라 방 두 칸

플라스틱 수거통에 지구를 버린다

지구가 지구로 낙하한다

텅, 아이는 울고, 지구는 플라스틱이었다

 

놀란 라일락이 꽃을 놓친다

낙하한 꽃잎 몇 장은 거울 속으로 날린다

버려진 지구 위로 거짓말처럼

나비, 난다 플라스틱 바다 가볍게 날아

적도 스치나 싶더니 순식간에 담벼락 넘어와

거울에 박힌다. 나비도 무겁다

 

거울과 집은 여전히 마주보고 있다

그 사이에 물끄러미 입구가 서 있다

짐이 되는 짐들은 모두 버려야 한다

아이는 여전히 거울 속에서 울고 있다

 

여자는 거울을

거울은 아이를 안고 트럭에 오른다

트럭이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

해가 동쪽으로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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