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강일구]
‘치사한 남편’ vs ‘무서운 아내’. 최근 영국 에너지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크리스 휸 하원의원 사건에 대한 반응은 이렇게 두 개였다. 휸 의원은 차기 자유민주당 대표 자리까지 노렸던 잘나가는 정치인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말 돌연 10년 전 과속운전 벌점을 아내에게 떠넘겼던 일이 밝혀져 장관직에서 물러났고, 지금은 선고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범죄가 밝혀진 건 남편이 바람피운 데 분노해 이혼했던 전 아내의 폭로 때문이었다.
이 외신을 본 첫 느낌은 ‘이런 치사한 남자’라는 것이었다. 반면 남성들은 대충 ‘무서운 아내의 보복’이라고 반응했다. 한때 프랑스 사회당 유력 대선 후보로 꼽히다 호텔 여종업원 성폭행 혐의로 기소됐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이듬해 아내 생클레르와 이혼한 것을 두고도 “대선 후보가 물거품 되자 아내가 남편을 버렸다”고 촌평하는 남자들도 보았다.
그러나 나는 기소 당시 내내 남편을 방어하던 그녀의 모습과 이혼 후에도 끊임없는 성추문으로 추락하는 스트로스칸을 보며, 20년간 이런 남편을 데리고 가정을 지키려고 애썼을 그녀의 노고에 숙연해졌다. 부부 문제를 보는 남녀 간 관점은 이렇게 엇갈리고, 이런 차이가 서로 접점 없는 갈등으로 증폭되기도 하는 것 같다.
JTBC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에선 팔순의 할머니가 드디어 이순재 할아버지를 향해 이혼을 선언했다. 항상 ‘옳은 말씀’ 잔소리로 아내와 식구들의 숨통을 조이는 할아버지는 자신의 ‘올바른 가치관’에 대한 자부심이 충만해 무례함과 폭압을 반성할 줄 모른다.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내의 인색함에 ‘옳은 말씀’으로 질타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조만간 그 역시 아내의 버림을 받지 않을지 걱정이다.
제 벌점을 떠넘겨도 좋은 사람, 성추문에도 자신을 감싸주는 게 당연한 사람, 늘 훈계하고 빈정거리고 남 앞에서 망신 줘도 되는 사람. 세상에 그런 식으로 대접해도 좋은 사람이란 없다. 그런데도 부부 일심동체라니 아내가 ‘나’라고 오해해 아내를 낮추는 게 겸손이라고 착각하는 못난 남자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부속물이 아닌 타인, 독립적 인격체다. 타인과 인간관계에선 무례하게 굴거나 존중하지 않으면, 늘 사달이 난다. 물론 대다수의 아내는 오래 참는다. 문제는 아내가 참지 않기로 맘먹는 순간, 그대로 파국이라는 것이다. 잘나가던 "휸"도 경력이 끝장났다.
부부 싸움을 가장 많이 한다는 명절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들이 모여 신경전이 극대화되는 때다. 좋은 명절에 부부 갈등이 고조된다면 한 번 반성해보는 건 어떨까. 과연 나는 배우자를 예의 바른 태도로 존중하고 있는지….
-양선희 논설위원 중앙 201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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