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와유(臥遊)

구름뜰 2013. 2. 2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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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허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


-  안현미(1972~ )

 

 

 

오늘밤 이 순간의 심상은

가을비로 국화로

그리고 먹먹한 먹물로

연서로 다시 태어난다.

여인은 연정은 사물에다 자연물에다 옮겨 놓았다. 

 

그래서 여인은

가을이 아니와도

비만 오면

국화가 아니라도

꽃만 보면

이미 님과의 와유가 함께하지 않을까. 

 

그리고 가을

국화가 피고 비라도 내리는 밤이면,

훗날,

세월이 아무리 흘러서 그 훗날이 되어도

오늘밤의 와유를 기억하지 않을까.

 

연정,

오늘이라는 짧은 순간을 길게 길게 이어가는 여인의 정한이 보인다. 

제목도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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