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준비해둔 못자리 속으로
편안히 눕는 작은 아버지
길게 사각으로 파 놓은 땅이
관의 네모서리를 앉혔다.
긴 잠이 잠시 덜컹거린다
관을 들어 올려
새소릴 보료처럼 깔고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죽음
새벽이슬이 말갛게 씻어 놓은 흙들
그 사이로 들어가고 수의 위에
한 겹 더 나무그늘 옷을 걸치고
그 위에 햇살이불 끌어 당겨 눕는 당신
이제 막 새 세상의 유쾌한 명찰을 달고
암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섭다며
둘러선 사람들 어깨를 토닥거린다
향 같은 생전이 다시 주검을 덮을 때
조카들의 두런대는 추억 사이로
국화꽃 향기 환하게 건너온다
- 강지희
추락하여 승객 전원이 목숨을 앗아간 사고 비행기에 타려다 만 사람이 좌석 번화가 적힌 비행기표를 말없이 보여준다. 그렇다, 그 사람도 하마터면 저세상으로 갈 뻔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비행기와 함게 추락하지 않았으며, 이제 운명 아니면 우연이 선사한 목숨, 이유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선물을 안고 여기에 서 있다. 이 선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선물로 받았으니 낭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선물로 받은 생명, 귀중한 목숨이니, 행여 미풍에 흔들리거나 위장병에 걸릴까 흥분하지 않을까 조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운명이 그에게 무슨 의도를 품고 있는게 분명하다. 그는 좀 얼이 빠진 듯 보인다. 지금까지는 그저 목숨을 부지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한다. 이런 놀라운 인식은 그를 거의 우울하게 만든다.
-표시가 있는 남자.
산도르 마라이 '하늘과 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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