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착해질 때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말하지 않아도
이십오 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내는 땅콩을 삶아서
못나고 쭈그러진 것을 먼저 골라 먹는다
손에 잡히는 대로 먹으면 되지
꼭 못나고 쭈그러진 것을
먼저 골라먹어야 하냐고 물으면
씩 웃고 만다
왜 대답은 없고
씩 웃고 마는 지
우리 식구들은 다 안다.
시를 읽다가
얼마나 슬픈 일이 있는 것일까?
보름째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늦여름
책방에서 사천 원 주고 산
오래된 시집 속에
배우고 깨칠 게 하도 많아
사만 원 주고 사도
아깝지 않겠구나 싶다
그럴 때는, 문득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찾아온다
그 마음 그대로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시인이 쓴
짧은 시 한 편 읽어 드리고 싶다.
찬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