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외 2편/서정홍

구름뜰 2013. 4. 17. 09:59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말하지 않아도

 

이십오 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내는 땅콩을 삶아서

못나고 쭈그러진 것을 먼저 골라 먹는다

 

손에 잡히는 대로 먹으면 되지

꼭 못나고 쭈그러진 것을

먼저 골라먹어야 하냐고 물으면

씩 웃고 만다

 

왜 대답은 없고

씩 웃고 마는 지

우리 식구들은 다 안다.

 

 

 

 

시를 읽다가

 

얼마나 슬픈 일이 있는 것일까?

보름째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늦여름

 

책방에서 사천 원 주고 산

오래된 시집 속에

배우고 깨칠 게 하도 많아

사만 원 주고 사도

아깝지 않겠구나 싶다

 

그럴 때는, 문득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찾아온다

그 마음 그대로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시인이 쓴

짧은 시 한 편 읽어 드리고 싶다.

 

찬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시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인과 소설가  (0) 2013.04.23
철들다  (0) 2013.04.19
'사이' 혹은 '경계'의 시학  (0) 2013.04.15
교대역에서  (0) 2013.04.15
하늘 길  (0) 2013.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