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거나하게 취한 김동리가
서정주를 찾아가서
시를 한 편 썼다고 했다
시인은 뱁새눈을 뜨고 쳐다봤다
-어디 한번 보세나
김동리는 적어오진 않았다면서
한번 읊어 보겠다고 했다
시인은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우는 것을....
다 읊기도 전에
시인은 무릎을 탁 쳤다
-기가 막히다! 절창이네 그랴!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단 말이제?
소설가가 헛기침을 했다
-'꽃이 피면'이 아니라 '꼬집히면' 이라네!
시인은 마늘쫑처럼 꼬부장하니 웃었다
-꼬집히면 벙어리도 운다고?
예끼! 이사람! 소설이나 쓰소
대추알처럼 취한 소설가가
상고머리를 갸우뚱했다
-와? 시가 안 됐노?
그 순간
시간이 딱 멈췄다
1930년 현대문학사 한 쪽이
막 형성되는 순간인 줄은 땅띔도 못하고
시인과 소설가는
밤샘을 하며
코가 비뚤어졌다
찰람찰람 술잔이 넘쳤다
-오탁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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