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양파

구름뜰 2013. 5. 1. 17:44

 

 

 

양파는 뭔가 다르다

양파에겐 '속'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양파다움에 가장 충실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완전한 양파 그 자체이다.

껍질에서부터 뿌리 구석구석까지

속속들이 순수하게 양파스럽다

그러므로 양파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스스로의 내면을 용감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우리는 피부 속 어딘가에

감히 끄집어낼 수 없는 야생 구역을 감추고 있다.

우리의 내부. 저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지옥.

저주받은 해부의 공간을.

하지만 양파 안에는 오직 양파만 있을 분

비비꼬인 내장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양파는 언제나 한결같다.

안으로 들어가도 늘 그대로다.

 

겉과 속이 항상 일치하는 존재.

성공적인 피조물이다.

한 꺼풀, 또 한 꺼풀 벗길 때마다

좀더 작아진 똑같은 얼굴이 나타날 뿐.

세번째도 양파. 네번째도 양파.

차례차레 허물을 벗어도 일관성은 유지된다

중심을 향해 전개되는 구심성의 아름다운 푸가.

메아리는 화성안에서 절묘하게 포개어졌다.

 

내가 아는 양파는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둥근 배

영광스러운 후광을

제 스스로 온몸에 칭칭 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건 지방과 정맥과 신경과

점액과, 그리고 음밀한 속성뿐이다.

양파가 가진 저 완전무결한 우둔함과 무지함은

우리에겐 결코 허락되지 않았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까뮈'의 '작가수첩2'에서 오늘 음미해본 문장들 올려봅니다.

 

"나는 늘 우리가 단 1분이라도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말하기 시작하면

사회는 무너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생트 뵈브

 

 

생각과 말의 차이를 표현한 문장중에

이만큼 예리하게 포착한  문장을 본 적이 없다.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제일 먼거리' 라는 말도 있지만,,,

 

 

 

어떤 영혼속에서 불편함을 고통스럽게 느끼는데 익숙해지지 않은 한

나는 나의 개인적인 행복을 위해서 전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셈이다. -스탕달

 

 

사형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자면 유혈을 좋아하는 폭군이어야 한다.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유죄는 아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규탄해서는 안된다.

-그의 내면의 그 무엇인가는 고통에 기인한다.

 

 

자기 스스로를 제한 하면 행복해진다.

 

 

남자들속에서도 여자들속에서도 애착을 가질 만한 것을 전혀 발견할 수 없는지라

나는 인류에 대한 봉사에 전념한다.

 

 

정의에 봉사하는 줄로만 알고 정작 불의를 증가시켰다는 아픔.

적어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리하여 더 큰 아픔을 발견하는 것:

전반적인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가장 엄청난 반항의 끝에 이르러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괴로운 일이다.

 

 

한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존재들을 죽이는 것이다.

 

 

한 인간을 그가 한 말이나 그가 쓴 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나는 그가 한 행동으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고 덧붙이고 싶다.

 

 

나쁜 평판은 좋은 평판보다 견디가가 더 쉽다.

왜냐하면 좋은 평판은 끌고 다니기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 일체의 과실은 큰 죄로 간주된다.

나쁜 평판을 받고 있을 때 과실은 용서할 만한 것으로 여겨진다.

 

 

자기를 바친다는 말은 자기를 소유하고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말이 된다.

 --혹은, 사람은 자신의 비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를 바친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만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 한 아무것도 억제하지 못한다.

그런데 인간이 욕망을 억제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따로따로 분리된 희생이란 없다.

스스로를 희생하는 각 개인의 뒤에는

그가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희생시키는 다른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승리는 유이한 승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대단하지 않다 해도

사랑은 대단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리라.

 

 

"그가 그녀를 잃은 것은 바로 그날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불행은 뒤늦게서야 비로소 오는것.

그러나 그는 그게 그날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잃지 않으려면 절대로 실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의 요구가 요구였던 만큼 그는 단 한 가지 오류도 범해서는 안 되었고

단 한 가지 약점도 보여서는 안 되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그걸 용납했을 것이다.

용납했고 나중에도 용납할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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