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구름뜰 2013. 6. 11. 08:56

 

 

 

 

부서지지 않으면

안 된다. 밀알이여!

고운 흙이

고운 청자를 빚듯

가루가 되지 않고서는 이루어지지 않은

빵.

한 때 투명했던 이성과 나는 욕망도

고독의 절정에서는 소멸된다.

가장 내밀한 정신이 깊이로

화해되는 물과 불.

빵은 스스로

자신이 이념을 포기하는 까닭에

타인을 사랑할 줄 안다

마음이 가난한 자의 식탁 위에

외롭게 올려진

한 덩이의 빵

- 오세영 '빵' 전문

 

 

한 덩이의 빵.

한 송이의 꽃

한 줄기의 바람

한 덩이의 구름

세상엔 그것 하나로만 존재하는 것은 없다.

 

너가 있어서 내가 있는 것이다.

내가 있는데 너가 없다는 것은 없는 것이다.

내게 너가 없는 내가 있다는 건 존재치 않으니

너도 나도 이미 없는 것이다. 

 

너와 나라는 건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해와 달처럼

꽃마음 나무마음처럼

 

꽃이

햇빛과 바람과 비의 그리움에

가슴앓이로 대꾸를 했듯

젖은 몸으로 받아들였듯,

꽃의 이야기는   

모르고 있거나 알고 있거나

꽃자체로 꽃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건 꽃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고,

꽃을 보는 나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너와 나의 존재방식인 것이다.

 

 

 

 

'시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쓰기 작업  (0) 2013.06.26
이 책  (0) 2013.06.14
시인에게   (0) 2013.06.08
신부  (0) 2013.06.05
  (0) 2013.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