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수필

내 유년의 돼지꽃

구름뜰 2013. 7. 4. 09:17

 

 

 

 내 어릴 적 고향집 마당에는 꽃이 없었다. 담장 아래 채송화나 봉숭아가 몇 포기라도 있는 집은 향기로워 보였으며 꽃이 없는 것은 엄마가 꽃을 좋아하지 않아서인 줄 알았다.

 

 ‘똘똘이’는 외할머니께서 주신 것이었다. 논 한 마지기 정도의 돈을 선뜻 마련해준 답례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똘똘이를 처음 본 것은 보자기에 싸여서 얼굴만 삐죽이 내민 채 외삼촌 손에 들려져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설 때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울타리를 만들고 집을 지었다. 먹이는 농사지은 고구마와 감자를 푹 삶아서 등겨와 섞어 유동식으로 먹이기도 하고, 가끔은 미숫가루와 섞어 먹이기도 했다.

 

 덩치는 작아도 수태가 잘됐고 새끼치기도 매번 12마리 이상을 낳았다. 신기하게도 눈도 못 뜬 돼지들이 처음 문 젖꼭지를 자기 것으로 안다고 한다. 어쩌다 발육이 더딘 녀석을 잘 나오는 젖에다 물려도 슬금슬금 제 젖꼭지를 찾아간다고. 새끼는 1년에 두 번 낳았고 두 달을 키우면 팔았다. 팔 때마다 우리 집에는 논이 한 마지기씩 불어났다.

 

 성장기 마당은 아기 돼지들 차지였다. 녀석들이 마당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외출을 막기 위해 대문에는 칸막이가 설치되었고, 우리는 대문 출입을 장애물 넘기처럼 드나들어야 했다. 감나무 그늘에서 공기놀이 땅따먹기 하던 친구들은 칸막이가 있으면 그 마당이 돼지 차지라는 걸 알았고, 우리가 놀던 그늘에선 아기돼지들만 늘어진 단잠을 즐겼다.

 

 엄마는 먹이를 줄 때 “똘똘, 똘똘” 육성신호를 보냈다. 언젠가는 장터에 팔러 갔다가 새끼줄이 풀어졌는데, 천지사방 흩어진 돼지들 때문에 사람들이 놀랐지만 엄마는 예의 그 “똘똘, 똘똘”로 녀석들을 한곳으로 모았다고 한다.

 

 해산하는 밤, 돈사에선 길게 누운 똘똘이와 그 곁을 지키는 아버지의 넓은 어깨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런 밤엔 엄마도 우리를 조용히 다독이셨지만 어린 나이에도 돼지의 분만이 진행되는 그 밤이 진중하고도 경사스러운 일이라는 걸 은연중 알고 있었다.

 

 똘똘이는 우리 집에서 7년 넘게 살았고 새끼는 15번 낳았다. 부모님이 대처로 이사 나갈 용기를 낼 만큼 살림을 일궈준 밑천이었다. 탐내는 사람이 많았고 먼 친척집으로 팔려갔지만 똘똘이의 생애는 아버지와의 인연이 전부였을까. 이듬해 새끼 3마리를 낳고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 아기돼지들도 함께.

 

 ‘똘똘이’가 떠난 지 30년도 넘었지만 “좋은 끝은 좋다”는 아버지의 선의지에 관한 지론까지 더해 우리 가족에겐 흥부의 제비처럼 잊을 수 없는 이야기다. 마당에 꽃은커녕 풀 한 포기도 없던 것은 수시로 풀어놓아야 했던 아기돼지 때문이란 걸, 돼지 치고 농사지으며 자식 가르치던 부모님의 삶 자체가 꽃 피우는 일이었다는 걸, 나는 어른이 되고도 한참 후에나 알았다.

 

 꽃은 없었지만 부모님 살아온 세월이 언제부터인가 내가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 꽃으로 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감나무 한 그루와 돼지우리 속에 밑동을 둔 대추나무가 전부였던 집, 내 유년의 마당에는 오늘도 돼지 꽃이 한창이다.       

- 이미애 <수필가>

포스코신문 오피니언[나도 한마디] 7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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