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누군가가 나의 삶에 핑크빛 가득한 기쁨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사랑을 꿈꾸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아닌가? 평범하고, 심지어는 권태롭기까지 하던 잿빛 삶이 핑크빛을 띠게 되는 기적을 그누가 바라지 않겠는가? 이런 기적과도 같은 기쁨을 선사하는 사람이 여신 혹은 신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 혹은 그녀가 아니었다면 결코 나에게 찾아오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던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자신이 그. 혹은 그녀의 고귀함에 비해 너무나 보잘것없을 정도로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랑은 경탄과 함게 시작되고. 경탄과 함게 유지되는 법이다. 결국 내 마음속에 애인에 대한 경탄이 없어졌다면, 사랑은 이미 덧없는 옛이야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사랑을 '오래 오래 '지속 할 수 있을까?
현대 프랑스 소설가 에릭 오르세나가 '오래오래' '열린책들'에서 파고들었던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소설은 40년 동안 끈질기게 지속되는 두 사람. 그러니까 엘리자베트와 가브리엘 사이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기묘할 정도로 오래 지속된 두 남녀 사이의 불륜을 다루고 있다. 보통 불륜은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일시적인 감정', 혹은 성적인 관계가 반복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드는 감정이기 쉽다. 그렇지만 두 사람 사이의 뷸륜에는 오묘한 구석이 있다. 정상적인 애인이나 부부 관계보다도 서로에 대한 사랑이 더 '오래오래'지속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랑에 빠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브리엘이 엘리자베트로부터 처음 느꼈던 감정은 바로 '경탄'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 보자.
그녀의 검은 눈에서 금빛 광채가 반짝거렸다. 희로애락의 그 어떤 감정으로도 결코 꺼뜨리지 못할 장난기였다. 가브리엘은 전율을 느꼇다. 그는 여자를 잘 몰랐다. 아내가 있긴 하지만,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아내라는 존재는 청혼에 응하는 그 운명적인 순간부터 여자라는 종에서 벗어나 별도의 잡종이 된다. 요컨대 가브리엘은 40년을 살도록 아직 이렇게 장난기 가득한 여왕 스타일은 만나 본 적이 없다.
엘리자베트도 마찬가지이지만 가브리엘에게도 배우자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지만, 아내나 남편은 서로에게 배우자일 뿐 결코 애인은 될 수 없다. 어느 사회이든 인간은 가족 성원으로 존재하다가 타인을 만나서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기 마련이다. 쉽게 말해 부모을 떠나 낯선 남자나 여자를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도록 만드는 동력이 바로 사랑이다. 그러니까 기존 가족 관계에 따르면 사랑은 일종의 배신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부모와 함께 있게 보다는 새로 만난 사람과 함게 있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불륜이다. 기존에 속해 있던 무리를 부정하도록 만드는 감정이 사랑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가브리엘의 말 "아내라는 존재는 청혼에 응하는 그 운명적인 순간부터 여자라는 종에서 벗어나 별도의 잡종이 된다" 라는 선언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가브리엘의 말대로 청혼이란 새로운 무리를 만들자는 요구가 이루어지는 '운명적인 순간'이다. 사랑에 빠진 뒤 청혼이 이루어질 때까지 두 사람은 자신의 가족에 속해 있으면서도 부단히 그곳에서 벗어나려는 상태에 있었다. 일종의 불륜 상태인 셈이다. 그렇지만 청혼이 이루어지는 순간, 두 사람은 새로운 가족, 새로운 무리로 묶이게된다. 바로 이때가 불륜 관계기 해체되는 시점. 즉 사랑이란 감정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이제 가브리엘의 여자는 아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내는 더 이상 불륜의 상대가 아니다. 물론 아내는 불륜이라는 찬란했던 과거를 공유한 여자이지만, 동시에 지금은 나와 같은 무리에 속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 가브리엘에게 아내는 '별도의 잡종'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기억 속에서는 불륜, 즉 사랑의 대상이지만 현실 속에서 그녀는 그저 아내의 역할을 수행하는 가족 구성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 은, 결혼하기 전에는 가브이엘의 아내도 지금 만나고 있는 엘리자베트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경탄을 자아내는 여자였다는 점이다. 한 번도 부정할 수 없었던 성스러운 가족 관계에서 거리를 두게 하고, 심지어 자신을 기존의 모든 관계로부터 벗어나도록 만드는 여자가 어떻게 경탄스럽지 않겠는가. 가브이엘의 감정을 더 면밀히 음미하려면 스피노자의 도움을 빌리는 것이 좋다.
경탄이란 어떤 사물에 대한 관념으로 이 특수한 관념은 다른 관념과는 아무런 연결도 갖지 않기 때문에 정신은 그 관념 안에서 확고하게 머문다.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다른 관념과 아무런 연결도 갖지 않은 특수한 관념,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다른 것과 비교 불가능한 관념을 말한다. 지금까지 실물로 본 적이 없는 거대한 폭포 앞에 서는 순간. 우리는 입만 바보처럼 벌리고 경탄하게 된다.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풍경이기 때문이다. 칸트라는 철학자가 말한 '숭고'의 감정이 바로 경탄의 감정에 다름 아니다. 가브리엘에게는 엘리자베트가 이렇게 압도적인 폭포처럼 경탄을 자아내는 존재였다. 이런 여자 앞에서 어떻게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여왕이고, 나는 단지 여왕의 은총만을 바라는 시종이 된 격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느낌을 "40년을 살도록 아직 이렇게 장난기 가득한 여왕 스타일을 만나 본 적이 없다"라고 묘사한 것이다.
압도적인 위엄을 가진 여황처럼 느껴지는 여자, 자신을 하염없이 평범하게 만드는 여자 당연히 자신을 가지고 장난을 칠 수 있는 여자... 엘리자베트는 가브리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들어 앉은 태양" 같은 존재였다. 엘리자베트는 얼마나 현명한가! 그녀는 가브리엘에게 항상 지지 않는 태양으로, 그러니까 경탄의 대상으로 남아 있기를 원했다. 오직 그럴때에만 사랑이 지속 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현실적으로그녀는 어느 무리에 속하지만 동시에 그곳에서 벗어나려는 불륜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본질이니까 말이다. 그래서일까.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는 엘리자베트가 작가의 대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의 입을 빌려 오르세나는 사랑의 비밀, 혹은 사랑을 '오래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비법을 우리에게 넌지시 알려 준다.
" 혼외의 사랑은 결혼 생활과 달라요. 게으르게 마냥 똑같은 모습을 남아 있을 수가 없죠. 끊임없이 온갖 것을 파악해서 법상함을 초얼해야 해요, 아니면 차츰차츰 너절한 타성에 빠져들어 그저 생리적인 욕구나 채우려고 만나는 관계가 되는 거예요. "
엘리자베트의 말처럼 관계가 "범상함을 초월하려는" 노력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말해 "너절한 타성에 빠져 그저 생리적인 욕구나 채우려고 만나는 관계"가 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 대한 경탄의 존재로 남을 수 없게 된다. 어쩌면 애인이나 부부 관계보다 불륜이 사랑을 유지하는 데 더 유리한 조건인지도 모를 일이다. 정상적이라고 인정된 남녀관계는 '게으르게 마냥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많을 테니까 어쨌든 범상함을 초월하려고 노력한다면, 경탄의 감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사랑도 '오래오래'지속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 감정수엄 3 경탄 중에서 -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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