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잘가요 엄마 / 김주영

구름뜰 2014. 10. 6. 09:50

 

 

 

 

 

 

 

 

이 책은 '객주 문학관'에서 작가에게 사인 받은 책이다.

자전적 얘기가 90% 이상이라는, 어쨌거나 장편소설이다.

 

지난 금요일 '객주문학관'에서 작가를 만나고 왔다.

 책부터 읽어야 기사든 수필이든 될 것 같아서 일단 읽은 책을 정리해 보려 한다

 

 

 

 

 

 

 할일이 있는데도 계속 딴짓할 때가 있다. 

이럴때는 몸이 바빠서 인 경우도 있지만,

아직 마음이 준비 되지 않은 때이기도 하다.

그럴땐 그냥 둬야 한다. 

 그러고 나면 저절로 시간을 내서 앉게 되는 때가 온다.

그 동안에 조급증만 안 내면 된다. 

내가 주말을 신나게 놀고 이 아침에 이러고 앉은 것처럼.

 

 

 

 

 

 

 

 '작가의 말'이 뒤에 나온다. 

독자들에게 먼저 읽히고 싶어서 여서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1판 1쇄 12년에 나왔고 이건 9쇄다.

밑줄 그은 문장들만 음미해도 선생님을 선생님 삶을 알기에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다 옮겨본다.

 

 

 

 

 

1

 

 언제 어느 곳에 가든 낮은 데를 찾아 자리잡는 것은 젊을 때부터 몸에 밴 습관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간극은 신혼 때부터 시작된 듯했지만 확실한 동기는 생각나지 않았다. 아내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뒤숭숭하고 고단했던 어머니의 오랜 과거를 한 가지씩 알아채게 되면서 대학을 졸업한 어엿한 중산층 집 규수라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자연 어머니를 경원시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어머니는 또 나름대로 마디마디 피맺힌 삶을 살아온 자신을 조소와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며느리와 소원하고 어색한 관계에 놓이게 된 듯 했다.

 

어머니는 그래서 만날 때마다 겉으로는 다정하고 온순한 척하는 며느리의 불쾌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오히려 수치로 여겼다. 대단한 운치도 가지지 못했으면서 꽤나 교양 있는 척 행세하는 여편네들이 그런 표정을 짓는 데 익숙하다는 것을 어머니는 오랜 밑바닥 생활의 경험으로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청송으로 내려와 장례식을 끝내고

사흘만에 서울로 올라가는 여정이 이 장편소설의 시점이다.

  그렇지만 그 사흘간의 여정에서 어머니의 생애와 선생님의 

유년기를 돌아보는 시간여행 같은 책이다.

 

 

 

이날은 구미도립도서관에서 주최한 '길위의 인문학' 3차시 행사였다.

'객주문학관'에서 특강이 한시간 남짓 끝난 뒤,

선생님이 살았던 집이 있는 진보장터를 둘러보는 일정이 있었다.

 

 강의 모두에서 서울에서 여러분들을 만나기 위해

일곱시간 걸려 왔노라며 무척 반겨주셨다.

강의가 끝나고 다음 일정이 어디냐고 물으셨고, 구미로만 가면 된다는 걸 알고는

기어코 멀리서 온 사람들 막걸리라도 사줘야 한다며

살던 집 보러가는 길 멈추고 건어물전을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그러고선 안주도 사셨고 '우리집이 어딘지 알으켜 줄께' 하는 듯이

신나게 걸어가시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뭔일인가 했는데. 다시 뒤돌아 가셨다.

ㅎㅎ 너무 신나게 가셨던 걸까 당신께서 살던 집을 지나치고 말았던거였다. 

그도 그럴것이 노점상들이 파라솔까지 높이 치고 옷을 팔고 있었다.

 

청송군청에서 그 집을 사들였고 앞으로 그 집 주변도 사들여서

선생님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더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사진 아래 뒤로 보이는 집이 선생님이 사시던 집이다.

 

 

 

3

 

"내가 촌구석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숙맥이라 해서 세상 물정 살피는 눈썰미가 생판 없는 것은 아니다. 생색 한 번 내보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니가 그러는 것이 내한테는 욕이 된다는 것을 먼저 살펴보아야 했다. 내가 니를 낳아서 키울 동안 가장 가슴 아픈 것이. 배를 곯게 하여 남의 밭고랑에 기어들어가 고구마 감자 훔치고, 논둑에 핀 뱀딸기 따먹고, 목화밭에 들어가 덜 익은 다래를 따먹으며 배를 채우게 한 죗값이 무더기로 있다."

 

 

"천성이 야무지거나 모질지 못해서 아무 남자한테나 매달려 울타리를 만들어야 물거미 뒷다리같이 연약한 니하고 판무식꾼인 내가 업신여김당하지 않고 목숨 부지하고 살겠다 싶어서 남자를 두 번이나 갈아 치웠으니 남의 지청구 들어서마땅하지.....그런 내가 장한에미상을 받아?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말아라."

  

 

 

장한 어머니상을 받게되었다는 전화를 드리는데도 극구 사양하는 어머니 모습이다.

남의 입에 오르내린 것이 진저리난 생애! 잘 한것도 없거니와,

상타면 또 남의 입에 오르내릴것을 염려한 노모의 마음이다.

이것이 작가에게 얼마나 쓰린기억일지.. 

 

결국에는 선생님의 아우님이 서울에 오셔서 수상을 하셨다고 한다.

평생에 아들집 서울은 한번만 다녀가셨다고 한다.

 

 

 

 

 

 

5

 

 

당신이 살아오면서 저지른 허물만 하더라도 태산처럼 쌓였는데, 어째서 뻔뻔스럽게 다른 사람의 귀 구린 일을 입에 올려 나불거릴 수 있겠는가,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햇다.

 

"장례 절차도 없이 화장을 하겠다는 우리처지에 허가, 무허가를 따진다는 것도 우습지 않습니까?"

 

아흔 넷에 숨을 거둘 때까지 어머니의 호적은 친정인 해주 최씨 댁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두 남자를 만나서 두 아들을 두었지만 그 중에 한 번도 혼인신고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장터 막걸리 집에서 '어머니 생각만 나면 술을 마신다'고 했다.

아니 '술만 마시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계속 풀어놓으신 얘기가 이 책 '잘가요 엄마'에 대한 말씀이셨다.

장례식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동생과 둘이 치뤘다는 얘기

그것도 무허가 화장장에서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까지.

 

 

 

.

 

 

안주도 없고 준비도 안된 막걸리 집에서 황태가 있었고,

이웃집 과일상에서 주었다는 청송사과가 안주로 뒤늦게 올라왔다.

이런 저런 말씀을 허물없이 어제 만나고 또 만난것 같이 털어 놓으셨다.

주거니 받거니 너댓잔을 마신것 같다.

갈수록 자리는 농익어 갔다

 

사람이 만나서 친해질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는 건 만고 불변의 진리같다.

술을 안마시는 건 안친해지고 싶어한다고 생각해도 될만큼(남자들 사이에서)

술은 마른 인간관계의 기름칠이다. 내 생각이다, ㅎㅎ.

 

 

 

6

 

 

이 세상에 사기꾼이나 도둑놈 들 치고 든든한 백 안 가진 놈들이 없기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당하고만 있습니다.

 

어머니는 선생님으로부터 호출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한 번도 호출에 제대로 응해본 적은 없었지만,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두려워했다. 나는 학교에 입학한 이후, 단 한번도 월사금을 낸 적이 없었다.

 

 

 

 문학관 특강에서도 월사금을 한 번도 안내고 국민학교를 다녔다고 하셨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고 일년후에나 졸업장을 받았다고 했다..

 

"잘가요 엄마"

이 책 제호이기도 한 이 말은 무허가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고

아우님과 두분이서 유골함 뼛가루를 던지면서 아우가 한 말이다.

 

 

 

"잘가요 엄마"

안개처럼 씨앗처럼...... 한평생 무겁고 가혹한 삶의 중력에서 벗어날 날 없었던 어머니는 결국 한 줌의 먼지였다. 그러나 민들레 꽃씨가 되어 바람을 타고 멀리로 흩어지는 것은 잠깐의 착시였을 뿐, 먼 느낌이 들도록 던진 몇 줌의 먼지는 대부분 우리들 두 사람의 바짓가랑이와 구두 위로 내려앉았다.

 

 

 

 

 

10

 

 

"그래, 자기에게 베풀고 아껴주었던 사람은 금세 잊어버리지만 미워했거나 가슴에 상처입혔던 사람의 내력 같은 건 오래 기억하게 되잖아"

 

선생님과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그 마룻장 아래를 포복으로 기어들었다. 몽당연필. 색종이. 고무, 색연필. 크레용. 삼각자, 딱지. 가위. 심지어 만년필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보물창고를 알아낸 후론 굳이 어머니에게 학용품을 사달라고 짓조를 까닭이 없었다.

 

 

 

 

키가 크셔서 벽에 올려진 텔레비젼 받침에 머리가 자꾸 닿았다.

키 작은 우리 회원이 바꿔앉자고 하는 데도

 우리보기엔 안괜찮은데도 당신께선 기어코 괜찮으시다고.

 

 

13

 

 어쩌다 안방에서 깜박 잠이 드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때면 나는 깊은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낭떠러지 위, 허공을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새아버지가 잠에 꼻아떨어진 나를 그대로 안아올려 썰렁한 건넌방에다 옮겨 누일 때였다. 대부분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언젠가 따뜻한 기척 때문에 눈을 뜬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안방을 빠져나온 어머니가 나 혼자 잠이 든 건넌방으로 건너와 나를 가만히 껴안은 채 오열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흘린 눈물에 모로 누운 내 뒷덜미가 젖어들자, 나 역시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내게도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뼈저리도록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 얘기를 막걸리를 마시며 해 주셨었다.

책을 읽기전이라 몰랐는데 책에 있는 부분이었다.

육친의 정을 뼈져리게 느끼는 시간이었다고

 아직까지도 그때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

 

 

 

 

 

14

 

 

눈을 감았는데도 무언가 어렴풋이 내 시선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먼지였다. 내 심장을 덮고 있던 미세한 먼지들이 어둠 속으로 흩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안치실 냉동 캐비닛에 갇혀 있었으므로 성에가 하얗게 끼었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주잔을 들이키며 눈물을 훔치던 아우의 얼굴이 어둠 속 멀리로 흩어지는 먼지 사이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둠이 깔리는 차창 밖으로 산기슭에 기대 있는 작은 산골마을이 지나갔다. 완만한 언덕을 기어오른 사래 긴 보리밭이 동구 앞 들머리를 푸른 잎으로 가득 채운 느티나무가, 바람에 떨고 있는 상수리 나무가, 허리 굽은 소나무와 쥐똥나무가 울타리가, 냇가의 논둑에 홀로 서 있는 백양나무가, 비틀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산골 아이들의 모습이 풍경처럼 스쳐갔다

 

이 책 장편의 마지막 문장이다. 

 

 

작가의 말

 

어머니는 나에게 크나큰 행운을 선물했다. 어머니와 내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어머니는 나로 하여금 도떼기시장 같은 세상을 방황하게 하였으며, 저주하게 하였고, 파렴치로 살게 하였으며, 쉴새없이 닥치는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자유의 시간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니 어머니께서 우리와 유명을 달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살았다. 사람들로부터 유린당하고 희생당하면서도 그런 질곡과는 무관한 채고 일생을 보냈다. 오히려 그 참혹한 공포심을 끌어안고 흡사 남의 것이든 진솔하게 끌어안고 살았다. 죽음조차도 아무런 불평이나 두려움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이 곧 함정이 아니란 것을 나에게 가르쳤다. 그래서 철부지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생애에서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부끄러움을 두지 않았던 말은 오직 엄마 그 한마디뿐이었다.

 

그 외에 내가 고향을 떠나 터득했다고 자부했었던 사랑, 맹세. 배려, 겸손과 같은 눈부신 형용과 고결한 수사 들은 속임수와 허물을 은페하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였다. 이 소설은 그처럼 진부했었던 어머니에 대한 섬세한 기록이다.  

 

한 호흡에 쓰신 문장인데. 한 호흡으로 읽기에는

너무도 많은 얘기들이 있는듯 해서(그것을 다 가늠할수가 없지만)

4문장으로 나누어 보았다.

 

.

 

선생님 연세 올해 76세

 

 

"선생님. 아버지와 동갑이셔요?"

"몇년생인데"

"39년 생요"

"몇짼고??"

"맏이 예요"

"아버지께서 장가를 늦게 가셨구만"

ㅎㅎㅎ

칭찬!도 이렇게 돌려서 주시고.. ㅎㅎ

 

사인하시는데다 선생님 그 사인 끝나고 제가 사진 찍을테니까

저보고 웃어주세요 했을때 내게 보낸 미소시다. ㅎㅎㅎ 우리 아버지보다 정말 젊으시다.

 

 

작가가 살아있는 문학관!

청송군청에는 객주문학관 담당계가 있는 것 같았다.

담당계장은 선생님이 계셔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소탈하고 호방하신 성격에 격없이 대해 주셔다. 

 

강연때보다 시장에서 막걸리 한잔하고 나니

분위가 얼마나 좋아지는지.

말리지만 않으면 모두 밤 샐! 기새였다

담당계장도 말리고 구미도서관 담당자들도 말리는 바람!에 일어서야 했다.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

 

" 많은 존경하는 분들이 있지만 나는 문인들을 존경합니다.

첫째 가난하게 사는 것을 챙피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고, 그리고 돈에 연연하지 않는 것,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 그래서 나는 문인들을 존경합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다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장터에서 우리들 차가 있는 관광버스있는 쪽으로도 와 주셨다.

 아버지 같이 사진촬영에도 기꺼이 응해주셨다.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될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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