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조카의 결혼식 나들이를 다녀와서

구름뜰 2014. 6. 7. 12:37

 

부모님께

소중한 이의 반려자 되는 이 순간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부모님의 태양보다 뜨거운 사랑안에서 자랐으니 저희도 행복하게 배려하며 살겠노라고 약속합니다.

현실이 힘들어도 세상에 무력해져도 고난이 성숙을 만들거라고 생각 할 겁니다.

부모님 역시도 그랬을 거니까요.

그래서 우리도 이겨나갈 겁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보고 계시죠.

행복한 순간 지켜봐 주시고 결혼 축하해 주세요.

 

부부로 평생 삶을 살겠다는 건,

씨앗을 꽃으로 만들고 다시 씨앗을 꽃 피우는 일 같습니다. 

 

부모님!

저희는 행복합니다. 

당신 앞에서 웃고 미래를 약속할 수 있고 감사함 전할 수 있어서

저희는 행복합니다.

 

글은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쓴 편지를 낭송한 부분이다. 

조카인 신랑의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고 리듬속으로 빠져 들때 쯤 급하지도 늦지도 않게 읽어내려간 신부의 편지는 하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특히나 저렇게나 아름다운 모습을 못보고 몇 년 전 하늘로 가셨다는 엄마에게 신부가 "보고계시죠  저 행복합니다" 라고 하는 부분에서 나는 혼났다. 메모도 하고 싶고, 눈물도 흐르고 결국 콧물까지 동반했다. 

 

 

 

 

 

조카 결혼식이 서울대학교 호암웨딩홀에서 열렸다. 

최고의 지성이랄 수 있는 곳인데다 졸업생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는 장소여서 참석하는 우리까지 뜻깊지 않을 수 없었다. 새식구가 되는 신부까지 이 학교가 모교라니 녀석들 어찌 이쁘지 않을 수 있을까!

 

결혼식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알맞게 정숙하고 알맞게 화려하고 알맞게 차분했다.

그동안 내가 봐온 어떤 결혼식보다도 감동은 컸다.

 

 

 

 

 

웨딩홀은 수국 생화로 꾸며져 있었는데 향기까지 좋았다.

플라워 디자이너가 잔뜩 신경쓰고 있었다. 꽃메니저 같달까. 그런 모습이었다.

 

 

 

 

 

 

 

언니가. 신부만큼 아름다운 사촌 언니가 촛불을 밝히고, 주례사님은 은사셨는데. 학생들만 가르치다연단에 서니 떨린다고 하셨다. 당부는 세가지 였다.  금과옥조로 여길만한  아무리 나이 들어도 살아있는 동안은 의식하고 인식하며 살아야 하는 이야기라 여기다 올려본다. 

 

 

세가지만 얘기 하겠습니다.

먼저, 먼저 끊임없이 반성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하라는 겁니다. 현명한 것을 보면 똑같이 되려고 하고, 현명하지 않은 걸 보면 자신을 반성하라는 겁니다. 즉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 되겠다 라는 거지요.

 

둘째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마부작침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 두보(이백)가  산을 내려가는데 돌에 도끼를 갈고 있는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뭐하느냐고 물으니 바늘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노인 왈 "그만두지만 않으면 가능하지" 라고 합니다. 

유학을 떠나는 두사람 학문의 길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째 성공이 아닌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고민하고 실천하는 부부 동반자가 되길 바랍니다.  아인슈타인은 성공하지 말고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논어에도 義(옳음)를 쫒되 利(이로움)를 쫒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인은 義를 따릅니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게쳐져 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라는 거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나눠먹을 밥을 지을 수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저린 손을 잡아 줄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게쳐져 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라는 거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신랑이 신부의 보모님께 드리는 편지 낭송후 거의 무반주 상태로 불러준 노래는 이적의 다행이다 였다. 노래를 못 불러도 마음은 전달된다는 걸, 노래는 리듬과 박자나 가창력에 있지 않다는 것, 감정이라는 것을 보고 듣게 되는 시간이었다. 녀석 버벅대기도 하고 한숨 쉬고 가기도 하면서 마지막 2절까지 잘! 불렀다. 징한 감동이었다. 신부에겐 평생 잊지 못할 노래이기도 하겠다.  

 

 

 

 

 

 

 

 

서울대학교에는 시내버스가 들어갔고, 웨딩홀도 4개나 있었다. 

각 홀마다 한개의 예식홀만 있는 건지 몰라도 호암홀은 한 개여서 모두 언니집 손님이었다. 그러니 모든 손님이 예식에 집중했고, 경청하는 분위기까지 공간이 사람들을 새로운 문화로 안내하는 양 그런 상황도 좋았다. 

 

 

 

 

 

요녀석 엄마 아빠 결혼식 때도 서울엘 왔었는데. 벌써 둘째라니.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격세지감이다.  이젠 한세대 위로 승격 제대로 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담백하고 이쁜 신랑 신부라니.

두사람이 7년을 계획하고 펜실베니아로 박사과정 유학을 간다는 데 둘다 교육학 전공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때 쯤이면 지금보다 또 다른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것이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 의를 쫒고 이를 쫒지 않는 최고의 지성으로 성장하기를 그저 무한 응원할 뿐이다. 칠월쯤에 떠난다고 했다.

 

 

 

 

 

 

 

 

 

 

 

2014, 6,6 호암웨딩홀 앞에서

 

우리가 조카 만할 때쯤이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은데,  엄마나 작은 엄마 고모는 이젠 거의 70대다. 대구에서 동생이 어른들을 모시고 왔고 동생과 나는 구미 ic에서 6시에 합류하여 서울엔 일찌감치 도착했다. 

 

조카중에 벌써 두번째 잔치다. 올망 졸망 녀석들이 만날때마다 쑥쑥 커서 몰라볼 정도다. 이렇게 바삐 살다 몇 번 만나고 나면 동생도 나도 금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잘 산다는 건 나이들수록 여유로와 지는 일 같고. 세상의 흐름을 자연처럼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일같다. 모두들 즐겁고 편안해 보인다.  오며 가는 차안에서는 왁자한 웃음소리 그칠줄 몰랐다.  결혼식 아니면 이렇게 구색!맞춰 여행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예식이 11시였는데 네비를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입력한 바람에 한 시간 일찍 도착한 시간을 한강까지 건너갔다가 다시 광화문등을 돌아서 서울대학교로 향하는 제대로 된 서울 나들이를 즐겼다. 애초에 계획한 건 아니지만 잘못 든 길 때문에 서울 구경은 제대로 한 셈이다. 

 

잊지 못할 아름다운 소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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