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or 여행 에세이

강원도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구름뜰 2014. 9. 27. 11:05

작년 느티나무독서회 문학기행은 원주 박경리문학관과 한솔뮤지엄이었다.

올해는 강원도 김삿갓 문학관으로 갔었다. 가는 길에 경유하기에 좋은 조선민화박물관과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엘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조선민화박물관이다. 민화의 특징은 낙관이 없다. 즉 작자미상이다. 그림은 서민적이고 기복신앙처럼 복을 비는 것이 주류였다. 

 

이곳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19금으로 출입 통제하는 춘화도였다. 한, 중, 일 작품이 다 있었다.  우리나라는 유교적 성향으로 조선 후기에 많이 그려졌다고 한다. 향략용이며 주로 창가(기생집)의 머리 병풍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풍자와 해학을 곁들인듯 하면서도 리얼!했다.

 

 

 

 

 

 

 

 

 

 

 

 

 

 

 

 

 

 

 

 

 

 

 

 

 

 

 

 

 

 

 

 

 

볕 좋은 가을날, 공기도 맑고 이러고 툇마루 같은 쪽마루에 엉덩이 걸치고 앉아서 곤두레밥 기다리는 짜투리 시간도 좋았다.  둘이었다가 셋이었다가 넷이되고 다섯이 되고 여섯까지 되었다.

이러고 서로를 끌어당기는 기운 같은 것 본능일 것이다. 자석같은 풍경이다. 

 

 

 

 

 

다알리아, 어릴적 목을 뚝 꺽어 제기차기하던 꽃,

그 시절엔 자연물이면 뭐든 놀이용으로 이용하던 시절이었다.   

 

 

 

 

 

 

 

 

 

김삿갓 문학관이다.

2층 지붕이 삿갓모양이다

 

 

 

 

 

 

해설사도 김삿갓 복장으로 안내를 하고 계셨다..

밥먹고 바로 달려온 자리 밀려오는 식곤증.. ㅎㅎ 그랬다.

 

 

 

 

 

삿갓이  공부한 사서삼경이다.

 

 

 

중세 국어 우리말 글이 인상적이었다.

장을 댱으로 아래아(.)가 쓰이고 있다.

ㅏ와 ㅑ 가 인상적이고, 소리나는 대로 쓴 늘글(늙을) 등이 인상적이다. 

 

 

 

 

 

 

 

 

 

 

 

김삿갓(김병연)이 삿갓을 쓰고 유랑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일에 대해서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연유인즉, 삿갓이 6살일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고 조부인 김익순이 (당시 선천부사 재직시절 )홍경래군에게 항복 목숨을 구걸하였는데. 이듬해 난이 평정된 후에 삼족을 멸하는 죄로 처형을 당하게 되고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삿갓은 모친과 강원도 영월에 이주하며 살게되고, 20살에 영월 동헌에서 실시하는 백일장에 장원급제를 했다고 한다. 

 

 

 

 

삿갓이 쓴 글은 조부인 김익순을 실랄하게 비판한 글이었고, 급제후 어머니로부터 그 분이 조부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후 하늘 볼 면목이 없는 죄인이라 하여 삿갓을 쓰고 유랑하며 양반귀족들의 부패상, 죄악상 비인도성에 대한 폭로 풍자시를 썼다고 한다. 

 

 

 

 

 

이제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고 육친을 버렷으니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리..

 

 

'촌철살인' 일려면 이정도 쯤일 것이다. 하지만 통재라 애재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조부를 향한 도끼날이었다는 것, 그는 자신의 발등을 찍은것보다 더 아팠을 것이다. 만약에 어머니가 집안 멸족과 관련한 이야기를 스무살 쯤 된 삿갓에게 미리 얘기를 해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문학관 2층 지붕이 갓모양으로 된 부분의 전경이다.

 

 

 

 

 

 

 

 

물길이 돌아가는 곳, 천혜의 요새!  같은 이곳이 쳥령포다. 

 

삼면이 물길이라 섬같은 곳 , 영월군 남면에 위치했다. 단종(조선 6데 왕)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 이듬해 사육신들의 상황복위 움직임이 사전 누설되면서 노산군으로 강봉, 이곳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두달 정도 머물렀다고 한다.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기어 영월 동헌에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겨서 생활했다고 한다.

 

 

 

 

 

 

 

 

 

 

 

 

관음송(천연 기념물 제 349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생긴소나무라고 해설사가 덧부여준 소나무다. 연리지는 따로인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인데. 이 것은 한 몸이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단종이 유배시절 이 소나무의 갈라진 틈새에 걸터 앉아 쉬었다는 설과, 때로 여기서 오열하는 소리도 들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높이나 둘레에서 왕후장상!이라는 느낌을 주는 소나무였다.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망향탑이다.

단종이 직접 쌓은 것이라는 유일한 유적이라는데. 나룻배 타고 건너올데 강물의 쓸린 돌들이 많이 더해져 있었다. 저 색바랜 돌들 틈으로 올라간 것들은 후세의 염원일려니 생각하니 그대로 볼 만은 했다.

 

 

 

 

먕향탑을 오르면 이렇게 가파른 낭떠러지만 있으니 천혜의 감옥인 셈이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청령포 건너편(저기 소나무 그림이 그려진 곳)에서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읊은 시조라고 한다. 저 물길을 울음길로 만들어 버린,  여성적인 글이라 생각했는데 옛 선인들의 님(임금)을 향한 충심이 잘 나타난 미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원도 인심일까, 김삿갓문학관 주차장 식당에서 곤드레 밥을 먹었는데 솥바닥까지 긁어다 주신 바닥!까지 보여주신 인심이다. 강원도는 인구대비 문화재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한다. 이렇게 먼길을 단숨에  올 수 있고, 어디서나 인터넷이 가능하고 통화가 가능한 세월을 살고 있지만 우리가 찾아가고 감화를 받는 것들은 대부분 비운의 주인공들이다. 마치 잘 차려진 밥상보다 저 누룽지가 더 인상적이었던 것처럼....

 

김삿갓도 단종도 살아서 영광을 누렸다면 후세들이 기리고 공감할 수 있었을까. 역사가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정작 후세 사람들이 기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이 더 많으니.  세상인심은 죽은이에게도 참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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