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남원에 있는 실상사!
너른 들판에 자리잡은 실상사는 뭔가 있다는 느낌이 드는 절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산속에 있지 않아서 일까. 25년 쯤 되었겠다. 까마득한 시절에 남원에 볼일 보러 왔다가 들렀었는데, 어제는 고향친구들과 지리산 노고단 가는 길에 들렀다.
담아온 사진들이 새록새록 그 시간을 되새김질 해 준다. 숨은 그림찾기처럼 자세히 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현장에서도 들더니 와서 보니 더 좋다. 원래 절터는 심산유곡이었는데 절이 들어서고 (신라시대)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논이 생겨났다고 한다.
한가한 화요일, 조용해서 좋았다. 친구가 사람이 많지도 적지도 않아서 좋다고 하더니 딱 그랬다.
'천왕문' 현판 아래 주련이 양쪽 벽에 걸려있다. 한글 자음과 모음을 띄워서 기호를 나열해 놓은 듯 하다. 한자 한자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가 득 함 도 빛 나 고
비 움 도 빛 나 라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
'가득함(충만)도 빛나고 비움(무소유)도 빛나라 이것과 저것의 경계, 편견을 두지 말라는 얘기다.
치우치는가 싶으면(좋거나 싫거나) 바로 균형을 잃어버리는 우리의 인식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무심코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상처'라는 단어도 그렇다. 상처라는 말은 누군가를 가해자로 즉 상처준 이라는 인식을 전제한 단어다.
'실상사' 입구 천왕문에 이런 주련이 걸린 건 실상사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관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옛 기와로 만든 탑이다. 실상사에서 출토된 것들로, 창건 당시부터 변천과정을 밝히기 위해서 실상사와 남원시가 함께 지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하였다고 한다. 주로 통일신라와 조선시대 기와라고...
이 기왓장 하나하나에는 길게는 12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손길이 담겨있을 것이다. 한 점도 유실되지 않고 지켜지는 문화재로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기왓장 위로 돌탑들이 더해져서 옛것이 현대와 잘 어울린 모습이다. 기와는 사람이 만들고 돌은 자연물이지만 한개 한개 뜻을 모았으니 탑이다. 처음엔 기와만 있었겠지만 사람들의 염원이 마음이 시간이 또 다른 풍상을 연출해내고 있다. 유래 없는 탑! 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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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을 하지 않은 보광전이다. 기름기 쏙 빠진 무엇처럼 소박미를 간직한 모습이다. 베흘림기둥이다
실상사는 선(禪)불교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이뤄진 곳이라고 한다. 신라시대 선종이 뿌리내린 도량인 것이다. 하지만 많은 변고를 겪고 폐사되어 200년동안 방치된적도 있다고. 재건과 보수를 거듭하면서 지내오다 고종 20년 (1883년)에 유생들의 방화로 소실되었고, 이듬해 월송스님이 보광전을 지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보광전은 1884년에 완공한 셈이다.
단청을 하지 않아서 보광전 앞의 석등과 탑이 더 잘어울린다. 굿 아이디어다.
보광전 앞 석등이나 삼층 석탑은 신라시대 것으로 실상사엔 보물이 11점에 이나 있다고 한다.
석탑도 아름답고 석등의 조형미도 빼어났다. 거기서는 몰랐는데. 집에 와 자료를 보니 석등곁에 사다리 돌이 있다고, 즉 등이 높아서 불을 밝힐려면 이곳에 오르도록 등과 함께 세트로 작업된 것이라고 한다.
옛 기와탑 뒤로 불사중 우물 흔적이 나와서 공사가 중단한 터가 천왕문을 지나 보광전 우측으로 있었다. 돌이 오래전 물에 쓸린것처럼 표면이 매끄러웠다. 예전 이곳이 계곡이었거나 빨래터이기도 했을까 싶다.
보광전을 지나서 극락전으로 갔다.
한 마을(구름뜰) 친구들이다. 서울에서 셋이나 달여와 주었고, 부산, 구미, 거창에서 모두 함양 친구집으로 모였다. 이중 나를 포함한 다섯명의 친구는 돌담이 어깨동무 하다시피 올망졸망한 고향집에서 태어났다.
유년기! 원 없이 놀았던 시절을 공유한 친구들, 지난 여름 길게는 25년 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었는데 모이고 보니 바로 초 중등 시절로 돌아갔다. 사람사이에 풍요롭게 남는 것이 있다면 추억일 것이다. 친구가 아니고 이십년 만에 만났다면 어색하지 않을까만 고향이라는 공통분모는 화수분역할을 했다. 밤이 새도록 보따리를 풀어도 끝이 없었다. .
천하 명당이라는 극락전 앞이고 보니 감회가 더하다
극락전 우측으로 승방같지는 않지만 놓여진 신발로 봐서 스님이 계실 듯 했다. 친구들과 조용히 볕을 즐겼다. 반가의 집보다 넓어 보이지 않는 극락전, 명당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극락전의 또 다른 멋은 문살이다. 전면 세칸으로 되어 있었는데 가운데 칸은 빗살로 되어 있고 양쪽 출입하는 문은 우물 정자로 되어 있었다. 빗살은 양반가에서나 했고 공법도 까다로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물정자가 편하다면 빗살은 멋스럽다. 함께 어울려 아름답고 운치있었다.
극락전 최고의 멋은 마당이었다.
잘 다져진 마당에 돌이 하나씩 놓여 있는데 자세히 보니 여기에도 숨은 그림이 있다.
연꽃 봉우리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시는 곳이다. 극락세계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아미타불 즉 후세의 부처님이다.
극락전에 가까이 갈 수록 만개하는 꽃, 극락에 다다랐음을 이르는 것일까.
극락전으로 가는 길은 양쪽으로 숫기와가 예를 다해주고, 가운데는 징검다리처럼 돌이 놓여있다. 그 돌을 밟으려다 꽃을 보고는 디딜수가 없었다. 돌길을 꽃길로 만들어 놓은 멋이라니. 탑 기단에서나 볼 수 있는 연화대(연꽃받침)를 마당에 놓아 두었으니 이 돌을 밟고 서면 탑이 될까, 부처가 될까! 그런 의미로 만들어 놓은게 아닐까 싶다.
소박미의 극치라면 이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극락전 가는 길은 담도 낮았다. 하여 들어가다 보면 내가 위로 오르는 느낌이 든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것인지 멋을 내려고 그런건지는 모르지만 이유가 있을 듯 했다. 사찰 안내자의 해설을 들을 것을 그런 생각이 든다.
친구들과의 1박 2일이 꿈처럼 지나갔다. 절간 모습이야 큰 차이가 없겠지만 주변 논 풍경이 봄의 초록부터 가을 황금까지 시계추처럼 시시각각 변해갈 것 같은 실상사. 그 안에서 실상을 잘 간직한 실상사가 자리하고 있으니. 절의 느낌이 세상속에 있으되 세상에 물들지 않은 정토임을 나타냄일까.
뭔가 있는 것 처럼 보였던 실상사가 구름뜰 친구들과의 추억까지 더했으니 최고의 도량으로 남을 듯하다. 기록물로 남기고 또 함께 나눌 생각을 하니 마음도 금세 구름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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