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구름뜰 2014. 11. 19. 20:25

 

머리가 희끗한 오십대 중반의 모 언론사 편집국장

야유회 마무리시간 취기가 올랐는데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호명을 받았다. 

흔들리는 버스보다 더 흔들리는 몸으로 통로에 섰지만 말은 한마디도 않고

셔츠 윗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주섬주섬  펴는데

동전만하던 것이 천원짜리 지폐만해졌다 

 

일행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는데

소의 되새김질처럼 천천히

한탄하듯 매우 천천히

취중진담하듯 읽었다. 

 

 

이십 대에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여기까지 들었을때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가 

그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대에는

마흔이 두려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여기까지 들었을때는 난 슬프게 멀쩡했다

내게도 콕 박혔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여기서는, 아! 화자가 오십대구나

우리 이야기구나 싶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마른 오징어 씹듯이 

서툰 발음으로 마지막까지 낭송했을 때 

차안의 모두는 취중진언에 취하고 말았다.

 

시도 술이 된다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박우현

 

이십 대에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대에는

마흔이 두려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 시집『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작은숲,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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