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수제비

구름뜰 2015. 1. 18. 10:51

 


둔내 장으로 멸치를 팔러 간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미루나무 잎들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얇은 냄비에선 곤두박질치며

물이 끓었다.

동생들은 들마루 끝 까무룩 잠들고

1군 사령부 수송대 트럭들이

저녁 냇물 건져 차를 닦고 기름을 빼고

줄불 길게 밝히며

어머니 돌아오실

북쪽 길 거슬러 달려 가고 있었다.

경기도 어딘가로 떠난 아버지는 소식 끊기고

이름 지울 수 없는 까마득함들을

뚝뚝 떼어 넣으며 수제비를 긇였다.

어둠이 하늘 끝자락 길게 끌어

허기처럼 몸을 덮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국물이 말갛게 우러나던 우리들의 기다림

함지박 가득 반짝이는 어둠을 이고

쓰러질 듯 문 들어설 어머니 마른 멸치 냄새가

부엌 바닥을 눅눅히 고이곤 하였다.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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