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3면 아니 4면이 녹지다.
아파트는 7,8층 높이의 산을 병풍처럼 두른 지형에 자리잡아서 도로 외에는녹지다.
작년에 아파트 앞 절대농지 같은 논 뿐인 곳에 연습장이 생겼다.
시간만 나면 놀러가는 놀이터가 생긴 셈인데 이곳에서 노는 재미는
그때 그때 자연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보는 재미도 한몫한다.
지난 겨울,
밤새 눈이 내려서 차들이 거북이 할 때도 간식을 챙겨 갔었다.
어릴적 눈 온 날 집에 있질 못하고 놀러 나온 친구가 없나 싶어서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던 때처럼, 동네 아이들도 나와서 눈싸움 하는 골목길을 친구와 함께 쏘다녔다.
차로 쏘다닌 거리가 더 많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평소와는 다른 풍경을 보는 즐거움이란...
이른 봄,
이월에서 삼월쯤이면 저 산 아래가 유일하게 눈길이 간다.
가을 추수 끝나고 그대로 방치된 논바닥까지 모두 흑백뿐인 그 맘때
산아래 보리밭이 푸르게 제 색을 발하기 때문이다.
논두렁 밭두렁에 냉이나 쑥이 올라오기 시작하고나물캐러 나갈 때 쯤이면
그 보리밭은 순식간에 수확을 당하게 된다. 사료용으로... 순식간에 일어 나는 일이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은
기계가 하는 일들인데
봄비가 오기 시작하고
마른 논바닥에 생기가 도는 가 싶으면
곧 논을 갈아 엎겠다 싶고,
봄비가 한 두번 더 오고
물이 들었나 싶으면
논바닥 한 쪽 못자리에 모가 눈에 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뭔일로 바빠서
들판 보기를 게을리 한 며칠이 지나고 나면
아니 하루나 이틀만 게을러도 넓은 들판의 모내기가 순식같에 끝나 버린다.
놀이터가 생기고 들판이 마당같다 보니
뗄레야 뗄 수 없이 눈 가는 즐거움이 크다.
.
농부는 없고
기계만 있는 것 같은 논 농사도 요즘의 풍경이다.
들에나와 논을 보는 농부보다.
들길을 산책나온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들길은 산책용으로 더 사랑받고 있다.
장맛비 속에서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 그제 약간의 소강상태였을 때
갑자기 이녀석들이 나타났다.
인근 유치원에서 나온 녀석들인데
자주 출몰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녀석들을 보는 즐거움은
달려가서 함께 놀고 싶은 걸 꾹꾹 참아야 할 만큼이다.
밀었다 당겼다 폰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지난 봄 경칩쯤에 개구리 보러 나왔나 싶게
꼬물거리며 나오더니
이 녀석들은 수시로 이렇게 나타난다.
다시 봐도 예쁜
언제봐도 반가운
꼬물이들이
들판을 보던 내 마음을 훔쳐버렸다.
오늘은 녀석들이 주인공이다.
우중에도 상큼해지는 이유들이 곳곳에 있듯이 힘든 시간중에 있더라고
위로가 되는 일들도 곳곳에 있다.
빨간불이면 쉬었다 가고
녹색불이면 바로 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선 곳에서 볼수 있고 갈 수 있는 길은 곳곳에 있다.
새소리도 여러가지다. 혼자 우리 소리와, 여럿이 우는 소리
먼데서 우는 소리와 집앞에서 내다 보라고 우는 것 같은 소리까지.
바람소리도 스쳐가는 솔바람에서 줄기까지 흔들어대는 바람까지
비도 산에 내리면 시끄럽다고해야 옳을 것이다.
가로수나 공원에 내리는 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보슬비는 그래도 듣기 좋은 음악같기는 하나 불협화음이고,
소나기는 여린 나뭇잎들을 사정없이 두들겨 대는
안마정도라고 해야 할 만큼 굵고 강하게 떨어진다.
태풍이 오기전 뿌리까지 뽑아낼 것 같은 바람은 산이 몸살을 치뤄내는 걸 보는 것 같다.
산이 통째로 흔들리는 걸 보면 무섭기도 하지만, 조금만 견디면 지나가리라 그런 맘으로 보게 된다.
왕창 장대비가 내리더니 금새 개었다.
아침 공기쫌 쐬겟다고 열어논 창문 사이로 빗줄기가 들어온 건데.
덕분에 블로그질 다말고 후다닥 저린 발로 이곳 저곳 물기를 닦아내고 다시 앉아 본다.
오늘은 소강상태라고 했는데 유리창은 금새 청소한 듯 말갛다
이러고 자연 속에 살면서 드는 생각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뿐이라는 거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 나를 충전시켜 주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