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왜 항상 부끄러운가?
미래는 왜 항상 불투명한가?
방문을 열면
얼굴이 화끈
뱃속이 발끈
허기를 참지 못하고 또다시
너를, 너희들을 소환한다 오늘
누구나 소유할 수 있지만,
아무나 소유하지는 않는
새로운 친구가 왔단다
너희들은 서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
지분을 배정받은 공유자처럼
묵묵하고 꿋꿋하다
우정 따위의 지나친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너희들이 더 많아질수록
너희들이 더 다양해질수록
나는 더 작아지고 적어진다
재능이 넘치면 노력이 부족해
시작이 창대하면 끝이 미약해
어떤 경지에 오르려다
어떤 지경에 이를 수도 있지
현재는 왜 항상 불완전한가?
뱃속을 다 채우면
나는 예정대로 구역질을 한다
신물 나는 완벽함을 향해
빛나가면서 빗나갈 때
뒤쳐지면서 뒤처질 때
놀랍게도
나는 방 안에서 놀라워진다
내 방을 누가 들여다볼까 봐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진다
눈을 감아도 네가 보인다
너희들이 빤히 보인다
아, 대체 나는 어디에 발을 들였단 말인가
내 앞에 도래하는
백지상태의 내일 앞에서,
새로운 친구같이 어색하기만 한 나는
-오은
* 독일어로 ‘놀라운 것들의 방’이라는 뜻.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에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방을 분더캄머(Wunderkammer)라고 불렀다.
—《창작과 비평》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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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1982년 전북 정읍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석사학위.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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