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일기예보

구름뜰 2016. 12. 13. 07:48

 

보도블럭 한 페이지에


지렁이 한 마리 온 몸을 밀어 무언가 쓰고 있다

철자법이 맞지 않아도

똑똑한 사람들 모두 비라고 읽는다

한 획만으로도 충분히

천기를 누설하고 있다

내일은 꿈틀꿈틀 비 오시는 날

비라고 써도 사랑이라고 읽는 사람에게

긴 긴 연애편지나 써야겠다

- 이화은(1947~)



‘징후’는 침묵의 언어다. 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징후는 ‘침묵의 웅변’이다. 지렁이의 언어는 징후의 언어이다. 징후에서 “천기”를 읽어내는 것이 ‘해석’이다. 이 해석의 회로에서 지렁이는 비를 낳고 비는 사랑을 낳는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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