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드 만(Paul de Man)이 지적한 것처럼 통찰(insight)은 맹목(blindness)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모든 통찰은 바로 그 통찰 때문에 ‘보지 못하는 부분’(맹목)을 남긴다. 연민 때문에 ‘사실’을 보지 못하거나 사실에 집중하기 때문에 인간적 감정을 놓치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늘 세계에 대한 ‘오독(誤讀)’의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는 셈인데 통찰이 한순간에 맹목이 돼 버리는 순간을 경험할 때, 남는 것은 “한 접시의 순결한 고백”밖에 없다. 부디 “모든 속수무책의 생애” 안에서 “오직 천사 같은 몸부림”을 읽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