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 촉 전구만 한
노랑 병아리가
강아지 집으로 들어갔다
어둑하던
강아지 집이
환해졌다
ㅡ곽해룡
갓 부화한 병아리다. 털도 마르기 전이이었다. 부화기에서 꺼내 세우고 찍으려는 휘청하는 바람에 얼른 손을 갇다댄 순간이다. 이 병아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구미 지인의 집에서 태어나는 걸 보았는데 이후 청도 친정으로 보냈다는 얘기는 들었다. 한 사년전 이었으니 살아 있을 확률은 거의 없겠다
추억은 내 맘대로 소환이 가능하다. 당신을 내 맘대로 소환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시간 함께한 추억이라는 열쇠가 있기 때문이다. 아픈 추억도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지금 당장은 아니라다 내가 외면한 어느 자리에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고향에서 살던 유년기 시절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갔다. 성경에 예수가 ' 죄없는 자는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한 구절 설교를 들을 때 그게 무슨말이지 몰랐다. 교회에 가면 나는 지은 죄도 없는데 죄를 지었다는 설정을 해 놓는 것 같았다. 회계하라고 했고 하느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했다.
나는 아무리 돌아봐도 지은 죄가 없었다. 그리고 하느님의 존재를 내가 믿는가 돌아봐도 아무래도 진짜로 하느님이 없는것 같다는 생각만 머리가 굵어질수록 더해 갔다. (그래도 나는 동네에서 교회에 나가는 아이였고 부모님은 물론 합께 다니는 사촌들에게도 내 생각을 말한적은 없다) 장로님이 우리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를 하거나 기도에서 늘 용서를 구하는 일이 익숙한 주변 기도에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아마도 교회가 앞으로 내가 어떤 죄를 지을 지도 모를 일을 미리걱정해서 그러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여튼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 그 원죄설이 나에게는 와 닿지도 않고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
중학교 2학년이 되고 우리집이 대구로 이사나오면서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장로님이 우리가 이사갈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장로교회를 알려 주셨는데 나는 그 교회를 찾아가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서너시간을 대구시내를 헤맨적이 있다. 그때 생각한 것이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길을 잃는 것이 교회를 찾아가는 길이었으니 나는 앞으로 교회에 나가지 말라는 어떤 운명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이 원래 없는 믿음에 대한 더이상 완벽할 수 없는 병명이 되기도 했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그때 누구든 돌을 던지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원죄설이 왜 필요한지 왜 신앙이 필요한지도 알게 되었다. 무결점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슬프게도 잘 알아가고 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들이 나를 불편하게 했고, 그 불편 덕분에 그래도 내 맘이 겸손을 흉내내게도 된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딜런은 1941년 생이고 미국의 포크송이 그냥 구전처럼 흘러다닐 때 작사 작곡하여 포크송의 궤도를 적립한 사람이다. 그의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도무지 이해가 쉽지 않았다. 문화적 켄텐츠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고 여튼 잘 안 읽히는 책이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코스 다음으로..
다만 그의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 (Blowing In The Wend)이라는 노랫말이 공감이 갈 뿐이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백사장에서 쉴 수 있을까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산이 씻겨서 바다로 내려갈까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
모르는 척할 수 있을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얼마나 많이 올려다보아야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겪어야 (많은 귀가 있어야)
타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음을 깨달을 수 있을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바람만이 아는 대답' 얼마나 더 살아야 얼마나 더 얼마나 더, 그렇게 되묻는 현실이 보인다. 딜런은 규정하지 않았다. 그는 바람에게 맡겨 버렸다. 모르고 사는 것 그렇지만 늘 바람은 곁에 있다.
위 시 병아리를 읽다가 오래전 이 사진이 생각났다. 여기 병아리 사진보다 그때 함께한 지인이 있어서 이 사진은 내게 잊을수도 버릴 수도 없는 사진으로 남아있다.
시 속 병아리는 왜 어미닭한데 가지 않고 강아지 집으로 갔을까?
강아지는 또 얼마나 환해졌을까
우리 살아가는 날들은 눈에 보이는 그 너머에 더 소중한 가치들을 묻어두고 사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 그 순간에는 잘 모르고 지나기도 하지만 결국 소중한 가치들은 마음들은
뒤에도 반드시 남기 마련아닐까.
바람만이 아는 대답들...
춥다,
오기로 한 전화가 안오는 것도 아닌 아침. 이런 시간을 바람에게 맡겨야하나..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