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 김종삼(1921~84)
출렁거리지 않는 삶은 없다. 돌아보면 누구나 살아온 시간이 기적 같다. 눌변인 듯 담박한 몇 줄이 더 미덥다. 김종삼의 시 쓰기는 지면에 아주 조금만 말을 남김으로써, 오히려 길고 깊은 얘기가 그 둘레 빈자리에서 울려 나오도록 한다. 아이들과 고전음악과 술밖엔 의지할 데 없던 황해도 은율 출신의 월남민. 그는 세상 떠나기 한 달 전 “구질구질하게 너무 오래 살았다. 더 누추해지기 전에 죽음만이 극치가 될지도 모른다”고 적었던 바 있다. 무엇보다 눌변의 그가 남긴 마지막 구절을 읽어 드리고 싶었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