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처음 사랑을 느낄 때 혹은 어떤 연민이 생길 때 그에 딱 맞는 말은 세상에 없다. 빛의 눈부신 파동 같은 것, 저무는 호수의 묽기슭 같은 애잔함이 있을 뿐 이미 오염된 세계의 말로 그 신성한 감정은 붙잡히지 않는다. 사랑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그래서 사라에 대한 왈가왈부가 있을 수 없다. 사랑에 대한 답이 있던가? 사랑할 뿐이다.
바람 속에 있는 자. 그저 바람을 견딜 뿐 바람에 대하여 따져 묻지 않는다. 왜? 그 어떤 말도 그에 대한 정답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른바 '묵언정진' 이란 말이 있다. 말이 삶의 큰 의미를 실을 수 없음을 알아 말을 내려놓는 것이다. 대게 말이 독이다. 그래서 가장 귀한 말은 '침묵'에서 빛난다.
'바람 속에 내가' 있음을 알며 바람 전체가 나이므로 그 처음과 끝은 없는 셈, 그저 열심히 불어갈 뿐이다. 말을 내려놓고 침묵이 그리워 깊은 산골짜기 골바람 속에 든 한 사내가 보인다.
-유승하(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