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의 무늬와 꿈이
물방을 속에 갇혀 있다가
이승의 유리문을 밀고 나오는,
그 천기의 순간,
이순의 나이에 비로소
꽃피는 순간을 목도하였다
판독하지 못한 담론과 사람들
틈세에 끼어 있는,
하늘이 조금 열린
새벽 3시와 4시 사이
무심코 하늘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김종해(1941~)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어떤 무늬가 새겨지는 걸까? 진정 사랑하는 마음은 그러나 쉽게 쏟아지거나 내보여지지 않는다. 그 마음을 가령 '물방울 속' 같은 장소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갇혀 있는 마음이라니! 물의 벽을 한 감옥, 그것이 사랑인 셈이다. 투명하고 또 빛나며 그러나 만질 수 없고 옮길 수 없다. 마치 저승의 물건인듯해 그것이 나오는 순간은 한 세계의 탄생과 같으므로'이승'으로 건너오는 것이다. 꽃이란 이름으로 오는 것, 그것의 전신이 사랑이었으리라는 깨달음, 그것도 허드레 사랑이 아니라 '물방울에 갇혔던 사랑'이었으리라는 발견은 그러나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오지 않으리라. 꽃 '피어난다'고 한 까닭이 그것이리라. 귀가 순해지는 나이가 뱔견한 섬세한 개화의 해석에 가슴을 맡겨보는 것이다.
-장석남
'아직 오지 않은 과거'/김혜순
내일은 갔다
어제는 올 것이다.
죽음은 태어났다
탄생은 멀었다
사랑은 생명이다. 사랑이 없는 세상은 죽음과 같다 사랑으로 잉태하지 못한 것은 생명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사건은 현재가 아닌 언제나 과거에 속하거나 미래에 속할 뿐이다. 눈앞에 있을 때는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지나간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 과거의 어떤 순간이 사랑이었다고 뒤늦게 깨닫거나 사랑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인은 감정이 예민해져서 느끼게 되는 몽롱한 상태의 감각, 일종의 페닉 상태에 빠져버리는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랑이란 그것이 지나간 뒤에, 눈앞에서 사라진 뒤에 과거로 회상되는 사건이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혜순의 사랑법은 시간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 박상봉 시인이 김혜순 시인의 시에 나타난 사랑을 정의한 문장이다. 인식의 확장이 놀라워 밴드에 올라온 글을 여기다 올려본다. 2017,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