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꽃나무

구름뜰 2017. 3. 23. 08:45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 이상(1910~37)


이 요령부득의 풍경은 무엇인가. 어느 꽃나무를 열심히 생각하며 열심히 꽃을 피우고 선 '한 꽃나무'의 이미지는, 화려한 만큼이나 비현실적이고 쓸쓸하다.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가 없는 발이 묶인 꽃나무인 것. 이어 그 발 묶임의 절망과 비애를 대신 발산하는 은유적 제의인 양 '나는 막 달아났소'라고 적고 있다. 이상 김해경은 경성 복판의 기술직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도 총독부에 취없했던 수재, 그렇기에 더욱 일문으로 쓰고 읽는 일이 당연했던 사람이다. 그의 문체의 현대적 매력은 상당 부분 일본 근대식 문체의 번역에서 온다. '꽃나무'는 그가 한글로는 처음 발표한 1933년의 시이며, 일본과 서구에서 동경과 조선적 현실 사이에 질식하고만 시인의 비극적 운명을 예시하는 듯하다.

-김사인





 

'성당' 이라는 곳엘 가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뭉클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곳이 어디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성당은 내 신앙과는 상관없이 그냥 그런 묘한 감흥으로 남아 있었다. 그것이 책에서 읽은 내용때문인지 아니면 지난해 유럽여행가서 느낀 감흥 때문인지도 알수가 없었다. 유럽에서 본 성당들은 하나같이 역사였고 놀라웠지만 그것도 구조물이나 규모에서 오는 감흥이지 영적 감화는 없었다.


그제 친구가 있는 성당을 갈 기회가 있었다. 친구를 만나러가는 길이었지만 성당이 궁금해서 가게된 걸음이었다. 설렘반 기대반, 그 감흥이 구체적으로 뭔지 모르지만 기억인지 여운인지를 안고 갔다. 예배실 안내를 받고 나오다 동쪽으로 난 창문이 눈에 확 들어왔다. 


눈위로 그려진 저 속눈썹자리에 선 것들이 내겐 나무로 보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이상'의 시 '꽃나무'를 읽으면서 다시 이 나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리고 잊었던 기억하나가 떠올랐다. 까막득하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

그제 성당에서 미진했던 어떤 기억이랄까 감흥 같은 것...

오늘 아침 이글을 쓰면서 떠올랐다.


오래전 어느 아침에 명동성당엘 간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이 왜 이 아침에 떠오르는 지 모르지만 우리가 어떤 기운을 느끼는 건 지금 당장은 몰라도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어떤 것도 허투루 일어나는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상 시인 난해시의 대가.. 오감도나 소설 등 많은 작품을 봤지만 이 시가 오늘 아침에 이렇게 잘 읽히는 건 신기한 일이다. 띄어쓰기를 거의 하지 않는 부분까지 잘 읽힌다. 그때는 안보이던 것이 어느 순간 보이는 것 같은 이묘한 기분........ 성모당엘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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