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여고시절 친구가 어떤 친구를 기억하느냐 물었지만, 내 기억에는 없는 친구였다. 즉 그녀와의 추억이 없었다. 사진 밖에 남는게 없다는 말은 우리가 그 만큼 기억에 취약하다는 얘기도 되겠다.
아름다운 걸 보거나, 인상적인걸 보면 그것이 스쳐 지나가는 매우 순간적인 것들인 경우 나는 바로 폰에 담는 편이다. 사람이고 자연물이고 현상이고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보면, 그때는 못보았던 것들을 음미할 수 있고 그 마음이 되살아 나기도 한다. 그러니 그 순간의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 찍는 일이 많다. 대부분 심상으로 남는 것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먼저 산을 본다. 밥을 하다가, 차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다가도 무람없이 본다. 이맘때 산은 연두가 연두 꽃이 핀다. 젖먹이를 목욕시켜 놓으면 달라지고 자고 나면 또 달라지는 것 같이 산도 날마다 커간다.
창밖 일이 일상의 기쁨인데. 그제 팔공산 사는 시인이 만나자 마자 연두 얘기를 꺼냈다. "이맘 때 연두가 꽃보다 좋아요" 라고. 첫인사가 연두 였다. 연두의 절정에서 만났으니 연두 말고 더 할 애기가 무애 있었을까만. 당신은 거기서 나는 여기서, 그러다 함께일 때 나누는 일이란 아무에게도 못 꺼낸 얘기를 공감하는 일이란.
사진처럼, 관계망에서 나도 모르게 찍힌 내 모습, 인화해 본다고 생각하면 지우고 싶거나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은 또 얼마나 많을지. 말도 그럴것이다. 일상을 다시 듣게 된다면 부끄러운 말은 또 얼마나 많을까.
연두는 초록이 될 것이고, 초록이 지치는 여름날도 머지 않았다. 내 기억속엔 없지만 , 그 친구 기억속에는 내 사진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 사진이 이왕이면 추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기심이라니...
그러니, 그래서 오늘 지금 내 모습이 중요하다
다래 순 따는 일이
아가 손 꺽는 일 같았지만
맛보이고 싶었다며
작년 마음같이 다래순이 왔습니다.
- 또 주지 마세요
- 싫어요
미안해도
마음이 앞서서 어쩔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수백번 수천번 미안했을
다래순을 주는 것처럼
당신이 연두라고 했을 때
저는 연두였습니다
당신이 연두라고 하지 않았을 때도
저는 이미 연두였습니다
당신의 다래를 다래하고
당신의 연두를 연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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