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너의 정체도 모르는데. 조금 더 거릴 두고 곰곰히 생각해보고 싶었는데, 준비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대화를 많이 나눈 적도 없었는데. 몇 안 되는 대화들도 그리 특별한 대화가 아니었는데. 네가 그렇게 유난히 빛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너는 그렇게 성큼 성큼 걸어왔지.
특별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평범한 건 더더욱 아니었지. 흔히들 거치는 '썸' 같은 관계 그런 걸 나는 요즘의 정석이라 생각했지. 내 탐색전이 무색하게. 너는 이게 진짜 전공법이라는 듯이, 직선으로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지. 그 손을 보는 순간, 네 속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나는 그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지.'
그런 순간이 있다.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무엇인가 내 속에 들어와 있을 때, 나는 그것이 낯설기만 한데, 정작 그것은 내 속에 있는 널 익숙하게 여기고 있을 때. "너 어떻게 들어왔니?" 물어도 대답이 없을 때 이런 순간 자체가 완전히 깨닫게 되는 순간,
'시인보호구역' 11월호 '오십 미터'/ 허연 시집을 소개하는 이동경의 글이다.
시집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 문장이다.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느끼는 이즈음에 누구나 경험하는 감정을 잘 묘사해 놓았다.
사람이 마음에 드는 건 구체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냥 좋은 것이다. 그냥, 매우 대책없음 내지는 대략남감으로 오는 것 같다. 이러저러해서 라는 생각이 든다면 좀 옹색하지 않을까. 어느 순간 섬광처럼 확 와닿은 것인데 그것을 천천히 느끼기도 하고 바로 느끼기도 하는 차이 아닐까.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 이유도 우리는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른다. 매우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매우 감성적이라서, 다만 이성적이라고 믿고 싶은 건 내 감성이 허술하지 않은 이유를 찾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사랑에 합리화가 필요한가 사랑이 그 만큼 구차한 감정은 아니지 않은가.
어쨋거나 누군가 내 안에 봄날처럼 들어와 있거들랑 그래서 따뜻하거들랑, 설레거들랑, 거부하지 말자. 왜, 거부할수록 욕망하게 될지도 모르므로,, 금기가 욕망을 만드므로, 그냥 두고 볼 일이다. 사랑없이 사는 삶이 어찌 아름다울 것이며 행복할 수 있을까.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사랑으로 태어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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