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구름뜰 2017. 4. 25. 07:58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서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놀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집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정진규


*삽! 삽이 삽이기만 할까

호미라고 해도 

당신이 말하는 순간 삽이 되고 호미가 되는 걸,....

겁나게 좋다는 

발음에 소리까지 

칼날 벼리듯 벼린 삽이 거칠지도 않은

밤이 깊었는데 잠대신 삽이 어느결에 와 있고

그럼에도 어찌해볼 수 없는.....


없는 걸 보게하고 안보이는 걸 있게 하는 상상력....


빛나게 닦아 녹슬지 않도록,

오달지게 한 번 써볼 그 삽 끄러 안고

오늘도 한나절 마른볏집으로 자신을 문지르는

한 대상을 상상해 보는일이란.....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놀슬지 않았다는

그 삽

징하게 안아주고 싶을 때 있다,

무작정 달려가 보고 싶은 순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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