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구름뜰 2017. 7. 31. 04:04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날은 올 수 있을까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물먹은 풀꽃 한 송이

방싯 꽂아줄 수 있을까

칡꽃이 지는 섬진강 어디거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한강변 어디거나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모래알이 아름다워

뜨거워진 마음으로 이 땅 위에

사랑의 입술을 찍을 날들은

햇살을 햇살이라고 말하며

희망을 희망이라고 속삭이며

마음의 정겨움도 무시로 나누어

다시 사랑의 언어로 서로의 가슴에 뜬

무지개 꽃무지를 볼 수 있을까

미장이 토수 배관공 약장수

간호원 선생님 회사원 박사 안내양

술꾼 의사 토끼 나팔꽃 지명수배자의 아내

창녀 포졸 대통령이 함께 뽀뽀를 하며

서로 삿대질을 하며

야 임마 너 너무 아름다워

너 너무 사랑스러워 박치기를 하며

한 송이의 꽃으로 무지개로 종소리로

우리 눈뜨고 보는 하늘에 피어날 수 있을까.

-곽재구

 

* 이 시는 마음먹고, 작정하고, 대놓고 인간적인 세계를 지지한다. 아주 확실히 지지한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 인간성이 좋으면 손해나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선포한다. 아주 확실히 선포한다. 곽재구 시인은 머뭇머뭇하지 않는다. 인간은 당연히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그는 독립군이 독립을 믿듯이

 

이때의 사랑은 내 딸이나 연인에 대한 나의 사랑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지는 응당의 사랑,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당연의 사랑을 말한다. 희망이나 인권 따위는 호모 사피엔스의 허구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앞에서 사랑 타령은 철 지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철 지났다는 말은,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장시간 지지되었다는 뜻과도 같다.

 

상상해보면 너무 좋다. 미장이와 대통령이 서로 네가 더 사랑스럽다 칭찬하는 사회. 지위가 아니라 인간이 먼저인 사회. 허구에 불과하다고 해도 떠올리면 뿌듯하다. 그러면 된 거다. 시는 된 거다.

- 나민애 문학평론가

 



새벽 편지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

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의 라일락 꽃향기를 맡기 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ㅡ곽재구

 

* 이 세상 어딘가

깊고 낮은 곳에

샘 하나 있다면

 

마르지 않을 샘 하나

 

새벽별을 보거나

새벽안개가 한치 앞을 삼키더라도

 

풀벌레 소리나

장닭의 쾌청한 노래

 

새벽 서한이라

당신을 받는 일상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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