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처럼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가슴을 저미며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눈물 없이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벌판을 지나
벌판 가득한 눈발 속 더 지나
가슴을 후벼파며 내게 오는 그대여
등에 기대어
흐느끼며 울고 싶은 그대여
눈보라 진눈깨비와 함께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쏟아지는 빗발과 함께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견딜 수 없을만치 고통스럽던 시간을 지나
시처럼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도종환
*배롱나무에 비는 내리고
메마르고 팍팍했던 시간들이
순하게 흘러갑니다
막히면 돌아가고
빈곳은 채우며 갑니다
강물도 황토빛으로 출렁입니다
배롱나무는 붉은 장미 같고
뜨겁게 핀 것들 부끄럽게 젖어 듭니다
말은 불편하고
나무는 나무가 아닌 것 같고
한 때 피었다 떠났거나
백일 동안
날마다 새 꽃을 피워내는 배롱나무나
모든 당신들 꽃입니다
어쩌자고 비도
비도 꽃을 피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