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도깨비 기둥

구름뜰 2017. 8. 9. 22:46

 

 

 

당신을 만나기 전엔,

강물과 강물이 만나는 두물머리나 두내받이,

 

그 물굽이쯤이 사랑인줄 알았어요.

 

피가 쏠린다는 말,

 

배냇니에 씹히는 세상 어미들의 젖꼭지쯤으로만 알았어요.

바람이 든다는 말,

 

장다리꽃대로 빠져나간 무의 숭숭한 가슴정도로만 알았어요.

 

당신을 만난 뒤에야, 한밤

강줄기 하나가 쩡쩡 언 발을 떼어내며 달려오다가,

 

또 다른 강물의 얼음 진군(進軍)과 맞닥뜨릴 때!

그 자리, 그 상아빛, 그 솟구침, 그 얼음울음,

 

그 빠개짐을 알게 되었지요.

 

당신을 만나기 전엔,

얼어붙는다는 말이 뒷골목이나 군인들의 말인 줄만 알았지요.

 

불기둥만이 사랑인줄 알았지요.

 

마지막 숨통을 맞대고 강물 깊이 쇄빙선(碎氷船)을 처박은 자리,

 

흰 뼈울음이 얼음기둥으로 솟구쳤지요.

당신을 만난 뒤에야,

그게 바로 도깨비기둥이란 걸 알았지요.

 

열길 물속보다 깊은

한 길 마음만이 주춧돌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강물은 흐르는 게 아니라 쏠리는 것임을.

 

알았지요, 다 얼어버렸다는 것은 함께 가겠다는 것.

금강(金剛)기둥으로 지은 울음 한 채, 하늘주소까지.

ㅡ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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