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은 김장 시작할 때부터 김치를 다 먹을 때까지 무 배추 얘기만 한다' 던 피천득 선생님의 글이 생각나는 때이다. 김장은 어느 집에나 이즈음 가장 큰 대소사가 아닐까. 김장 안한지가 몇 년 되었다. 먹는 양이 워낙 적어졌고, 지인이 김치공장을 하고 있어 사철 신선한 김치를 먹을 수 있기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토요일은 아버지 생신과 김장 날이 겹쳐 친정엘 갔었다. 손 빠른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났노라며 김치를 한통씩 담아 놓기까지 해서 나와 동생은 도운 일도 없이 햅쌀밥에 김치 맛까지 더해 놀다 왔다.
오랫만에 고스톱 판이 벌어졌다. 엄마와 나 여동생과 제부 넷이서 놀았는데, 주방에서 한참 소리가 나더니 아버지께서 과일을 깍아 오셨다. 뒷집 마당 감을 수확하는 날이라 몇개 얻은 것이라는데 금방 딴것이라 육질이 단단하고 수분량이 얼마나 많은지 신선했다.
아버지는 엄마일 도우는 걸 즐기신다. 두분이 팔순을 일 이년 앞두고 있는데. 새벽 운동에서 소소한 집안일 고스돕까지 일도 놀이도 쿵짝이 잘 맞는다. 어쩌다 전화하면 화투치니 빨리 끊으라 하신다.
예쁘게 깍은 것은 아니지만 귤은 껍질까기 좋도록 칼집을 넣어왔고, 사과도 벌레먹은 사과였는지 모르지만 가지런히 담아 오셨다. 격세지감이랄까! 웃어른이 깍아오고 우리는 맘 놓고 놀았다.
소소한 것부터 어른이 격없이 내려놓을 때 함께하는 시간은 더욱 더 부담없고 즐거운 시간이 되는 것 같다.
2017,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