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자신의 개인적인 비밀스런 생각들을 적어놓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얄팍한 생각이다. 귀머거리에, 벙어리에, 문맹인 사람에게 비밀을 털어 놓는 것에 매한가지가 아닌가. 나는 일기에서 나 자신을 누구에게보다 더 솔직히 표현할 뿐 아니라 나 자신을 창조한다.
일기는 나의 자아를 발전시키는 수단이다. 일기장에서 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독립된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일기는 나의 일상생활의 기록일 뿐 아니라, 많은 경우에 있어 그 대안을 제시해준다.(......)
글쓰는 일은 왜 중요한가? 내 생각엔 아마도 나의 자기중심성, 이기심 때문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그 작가라는 페르소나가 되고 싶기 때문에 꼭 할말이 있어서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다. 내 자만심을 토닥거리며 (이 일기가 내게 제공해주는 기정사실) 나는 할말이 있다는, 어떤 말을 해야 한다는 자심감을 얻어내야 한다.
나의 '나' 는 보잘것없고, 조심스럽고, 너무 제정신이다. 좋은 작가란 엄청나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때로 아둔할 정도로까지 제정신인 사람들, 비평가들이 그들을 바로잡아주지만 그들의 제정신이란 천재들의 바보스런 창조성에 붙어 기생하는 것일뿐.
1958년 12월 31일
스물다섯 수전 손택이 쓴 '일기 쓰는 일에 관하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