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구름뜰에는 살구나무가 한그루 뿐이었다.
집성촌이라 일가이긴 했어도 가까운 친척집은 아니었는데. 그집 뒤란에는 대숲이 야트막하게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뒤란에 살구나무가 커서 대숲으로 가지를 뻗어 있었다. 비온 뒤면 대숲엘 살구를 주으러 갔었다. 대숲은 죽순이 쑥쑥 올라와 있었고 바람이 불면 댓잎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후두둑 등줄기를 적셨고 바짓가랭이가 젖기도 했지만 살구는 비가 주는 선물 같았다.
살구가 익어가는 아마도 이맘때 였으리라.
큰집에는 동네에서 제일 큰 감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도 몸통만 뒤란에 있을 뿐 울밖으로 뻗은 가지가 더 많았다. 감이 익고 떨어질 때면 아버지는 동이 트기도 전에 주워와 잠든 우리들 머리맡에 놓아두셨다. 눈 뜨면 머리맡부터 확인하던 시절이 있었다. 익어 떨어졌으니 성할리도 없는 감홍시 맛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감홍시 맛도 맛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먹었던 기억이 더 선명한 세월이다.
구름뜰에는 앵두나무도 한 그루 있었다.
냇가에 멱감으러 가는 길 끝집에 있었는데. 그 나무도 해마다 울타리 밖으로 가지를 뻣어서 어릴 때는 주워 먹다가 키가 크면서 그집 마루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터엔 친구들과 서리를 하기도 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울타리를 벗어난 것들은 이웃에게 선물이 되는 그런 시절이었다.
사람도 품이 넓은 이가 있다.
울타리를 넘어 사방 팔방으로 가지를 뻗는 나무처럼.
처음으로 살구를 따보았다.
며칠 전만 해도 매실같아서 언제 익을까 했는데, 일주일 쯤 지났을까 어제 제법 색이든 살구를 보고 놀랐다. 신맛이 먼저 올라왔다. 붉은 빛 띄는 것을 따 보려는데. 살구가 기다렸다는 듯 저절로 툭 내손으로 들어왔다.그래서 어릴 적 비에도 잘 떨어졌던 것인가보다.
살구를 딸 때마다 휘청 가지가 몸이 가벼워지듯 들어올려졌다.
제 무게 만큼 늘어진 가지들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살구는 날마다 놀러가는 아지트에 있는 나무다.
말하자면 서리인 셈인데 주인장이 언제든 먹고 싶을 때 누구든 따먹으라고 익기전부터 허락한 살구다.
신맛과 단맛 과육은 적당히 부드럽고 싱싱했다.
시어서 못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맛을 보고는 또 따오고 또 따오고 친구 대여섯명이 번갈아 가면서 서리를 해 왔다. 친구가 살구를 보고도 먹고 싶지 않다면 나이든 거라고. 우리는 모두 젊다는 걸 확인했달까.. .
살구나무를 보면서 놀랐고
따면서 놀랐고
맛보면서 또 한번 놀랐다.
언제나 지금이 좋다.
언제나 지금이었던 그때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