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신년 메시지
항암·방사선치료 없이 정기 검진
육체도 내 일부, 친구로 지낼 뿐
삶은 본래 끝없는 헤어짐의 연속
탯줄 끊는 순간부터 엄마와 이별
7년 전 먼저 떠난 딸이 남긴 비전
생과 사는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
여태껏 써온 글 모두 ‘죽음의 연습’
내 생각 모은 유언 같은 책 내고파
- 질의 :건강하신가.
- 응답 :“우리는 사실 태어날 때부터 투병한다. 4㎝도 안 되는 좁은 산도(産道)를 필사적으로 나오지 않나. 그때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그건 목숨을 건 모험을 하는 거다. 그렇게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또 이별을 한다.”
- 질의 :무엇과 이별인가.
- 응답 :“태중에서는 엄마와 한 몸으로 존재한다. 탯줄을 끊으면서 엄마와 이별해야 한다. 그러니까 만남이 먼저인가, 이별이 먼저인가. 그렇다. 이별이 먼저다. 그러니 삶의 시작은 ‘헤어짐’에서 비롯된다. 삶은 끝없는 헤어짐의 연속이다.”
이 교수는 문득 여섯 살 때 기억을 떠올렸다. 잊히지 않는 순간이라고 했다. “나는 굴렁쇠를 굴리며 보리밭 길을 가고 있었다. 화사한 햇볕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고 있었다. 대낮의 정적, 그 속에서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부모님 다 계시고, 집도 풍요하고, 누구랑 싸운 것도 아니었다. 슬퍼할 까닭이 없었다. 그런데 먹먹하게 닥쳐온 그 대낮의 슬픔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내게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였다.”
- 질의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다.
- 응답 :“그렇다. 내가 병을 가진 걸 정식으로, 제대로 이야기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부분적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의사가 내게 ‘암입니다’라고 했을 때 ‘철렁’하는 느낌은 있었다. 그래도 경천동지할 소식은 아니었다.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암이야. 어떻게 할까?’ 여섯 살 때부터 지금껏 글을 써온 게 전부 ‘죽음의 연습’이었다. ‘나는 안 죽는다’는 생각을 할 때 ‘너 죽어’ 이러면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너 죽어’ 이런다고 두려울 게 뭐가 있겠나.”
이 교수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과일 속에 씨가 있듯이, 생명 속에는 죽음도 함께 있다. 보라. 손바닥과 손등, 둘을 어떻게 떼놓겠나. 뒤집으면 손바닥이고, 뒤집으면 손등이다.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생명이 있겠나. ‘나는 살아있다’는 생명의식은 ‘나는 죽어있다’는 죽음의식과 똑같다. 빛이 없다면 어둠이 있겠나. 죽음의 바탕이 있기에 생을 그릴 수가 있다. 의사의 통보는 오히려 내게 남은 시간이 한정돼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이 교수는 방사선 치료도, 항암 치료도 받지 않는다. 석 달 혹은 여섯 달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 체크만 할 뿐이다. 그는 ‘투병(鬪病)’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다. 대신 ‘친병(親病)’이라고 불렀다. “듣기 좋아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서양사상은 영혼과 육체를 둘로 나눈다. 영혼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고, 육체를 중시하는 사람이 있다. 동양사상은 다르다. 영혼과 육체를 하나로 본다. 상호성이 있다고 본다. 의사가 ‘당신 암이야’ 이랬을 때 나는 받아들였다. 육체도 나의 일부니까. 그래서 암과 싸우는 대신 병을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