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금오산

구름뜰 2020. 4. 15. 20:08

 

 

 

 

 

 

 

 

금오산은 집에서 가까운 곳인데도 단풍 좋은 늦가을에나 찾는 곳이다. 어쩌다 가도 대혜폭포까지만 오른다. 큰맘 먹고 할딱고개까지 할딱! 하고나면 정상쪽으론 한 발짝도 엄두를 안냈다.

 

20대 때 나는 한무리의 일행들과 금오산 정상에 오른적이 있다. 다들 페이스를 잘 유지해가며 올랐다. 나 혼자만 뒤처졌다. 꼴찌로 겨우겨우 사력을 다해 오르면서 든 생각은 , 재미는 커녕 이렇게 힘든걸 왜하나 뭔 이런 고생길이 있나. 내가 '다시는 여길 오나 봐라' 였다.

 

그 기억 때문인지 이후로 걷기도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다 기회가 와도 의욕적이지 않았다. 젊은 날의 첫 경험이 이후 행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한 번 아닌건 두 번 세 번 기회가 와도 스스로 차단했다.

 

이렇게 몸치던 내가 지천명도 몇 개나 지나 요가를 시작했다. 날마다 고문 같은 수업! 그렇지만 몸의 진도를 확인할 때마다 인내를 달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느낀지 벌써 1년이 넘었다. 호흡도 좋아졌다.

 

요가원 선배들은 금오산 정상을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나하고는 체급 자체가 다르다. 그녀들이 산을 나하고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건 오래전부터 눈치챈 터였다. 체력에선 나와 다른 사람들....

 

"낼은 금오산 산행이나 한 번 갈까? 가자, 좋지, 미애씨도 같이 갈래요"

 

헐! 올 것이 왔다. 선뜻 오케이가 나오지 않았다. 정상까지 가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처음 요가갔을 때 그녀들이 이끌어 주고 만들어 준 분위기는 오래전 나만 혼자 뒤처진 산행과는 다르다는 걸 체감한터라 한 번 가볼까 싶은 마음이 동했다.

 

가다가 못 오르면 혼자 기다리고 있어도 되냐고 했더니 기꺼이 괜찮다고.....그렇게 해서 나는 30년 만에 금오산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녀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될까 될까 ...나를 의심하고 시험하면서 올랐다. 넷이서 올랐는데 세분이 교대로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주었다. 생활 체육을 즐기는 언니들 답게 호흡도 좋고 걸음걸이도 시종일관 반듯했다. 그녀들이 위대해 보였다.

 

나혼자만 숨이 가파왔다. 요가처럼 복식호흡을 해야 한다는 것, 계단을 오를 때는 내딛는 다리의 무릎을 쫙 펴줘야 한다는 팁도 알려주었다.

 

20대 때 보다 몸이 좋아졌을리야 없겠지만 요가 덕분인지 일행 덕분인지 한걸음 한걸음 포기할 만큼 힘든건 아니었디. 약사암 쪽은 초행길이라 까막눈인 내게 저기까지면 된다며 계속 용기를 내게끔 에너지를 주었다. 짧게 쉬는 시간이 체력 회복을 도왔다.

 

오르다 보니 바위틈에 옹달샘도 두곳이나 있었다. 절벽쪽으로 키 낮은 돌담도 있고 돌탑도 있고 수많은 손길들이 곳곳에서 나를 맞아 주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약사암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아! 감개무량이라면 이정도 쯤 이리라.

 

악사암은 1300년 전 의상대사의 수행처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한 발 아래가 절벽인 곳을 수행처로 삼고, 그때는 또 여기 오르는 길은 얼마나 가팔랐을지. 세속을 등진 스님의 수행 일상은 어떠했을까.

 

초파일을 앞두고 연등이 처마밑에 걸려있었다. 오랫만에 삼배를 했다. 발원할 그 무엇도 없이 그냥 좋았다. 허공에 몸을 둔것처럼 발 아래가 아득했다

 

금오산 등반에 대한 오래전 기억 때문에 생각도 쳐다보지도 않았던 그 벽을 스스로 넘은 기분이다. 성장기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의 첫경험에서 부모나 주변의 역할이 중요함을 알 수 있겠다.

 

사람과 사람이 주고 받는 에너지가 얼마나 큰 가능성인지 . 보이진 않지만 절로 아는 것들. 지난 날 혹여 내가 간과한 에너지 때문에 상처받은 이들도 있었으리라. 오늘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동력이 된 일은 있었는지.

 

금오산 철탑은 예전과 같고, 함께한 님들은 봄 연두처럼 싱그러웠다. 막걸리에 발그레해진 뺨같은 진달래가 가는 곳마다에서 반겨주고 있었다.

 

참 고마운 시절인연이다.

'사람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  (0) 2020.07.22
윤사월  (0) 2020.05.19
다래순  (0) 2020.04.11
야외 수업  (0) 2020.04.06
마스크  (0) 2020.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