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애월

구름뜰 2020. 11. 17. 10:40





하귀에서 애월 가는 해안도로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길이었다

밤이 짧았다는 애긴 아니다
우린 애월 포구 콘크리트 방파제 위를
맨발로 천천히 걷기도 했으니까
달의 안색이 마냥 샐쭉했지만 사랑스러웠다
그래선지, 내가 널 업기까지 했으니까

먼 갈치잡이 뱃불가지 내게 업혔던가
샐쭉하던 초생달까지 내게 업혔던가
업혀 기우뚱했던가, 묶여 있던
배들마저 컴컴하게 기우뚱거렸던가, 머리칼처럼
검고 긴, 밤바람 속살을 내가 문득 스쳤던가

손톱반달처럼 짧아, 가뭇없는 것들만
뇌수에 인화되듯 새겨졌던 거다
이젠 백지처럼 흰 그늘만 남았다

사람들 애월, 애월, 하고 말한다면
흰 그늘 백지 한장, 말없이 내밀겠다
ㅡ엄원때
―시집『물방울 무덤』(창비시선 27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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