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미안하다 말을 못해서

구름뜰 2022. 2. 10. 21:08

빗길에 착 달라붙은 나뭇잎을 보면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맞딱뜨린 느낌이 든다

꺼낼 수 없었던 어려운 말

그렇게라도 짚고 넘어가길 바란 것일 텐데

허드슨강을
툭툭 끊으며 가던 적막한 유빙들
함께 떠가던 찬 주검들
이쪽 심장이 저쪽 심장에 부딪고 있었지

그런 춥고 검은 날
조금 더 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남을 수도 떠날 수도 없어서
이리저리 병을 옮기던 폐와 심장의 기근에서

흔적은 허약한 쪽에 새긴 비명들인 것을

우리 무사할 수 있을까
잘 가라앉을 수 있을까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미안해서
다른 말을 하기도 했다

젖어 선명한 모습은
제 웃음을 저 홀로 듣는 허무나 공포였을 테니

바닥에 착 붙어서

어디 닿을 곳 다시없어서
ㅡ이규리

'시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식  (0) 2022.03.14
그렇지 않고서야  (0) 2022.02.25
저녁의 문  (0) 2022.02.07
각축  (0) 2021.12.17
모두 다 꽃이야  (0) 2021.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