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모어는 (1478~1535) 57세에 처형당했고 38살 (1516년)에 유토피아를 썼다.
저는 유토피아를 통해 '인식에 관한 문장'에 관심이 갔습니다. 한 사람의 가치관은 그의 생애와 무관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식'이 삶을 규정짓는 거라 믿으며 저는 제 인식을 향상해 가는 방법에 관심이 많습니다. 거슬리는 맘이 생기면 저는 바로 제 속을 들여다봅니다. 그 마음들은 대체로 관계에서 '소화시키지 못한 찌꺼기 감정'임을 알게 됩니다. 쓰레기 치우듯 이해가 수반된 개운한 상태를 저는 즐깁니다.
각설하고 유토피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부에서 라파엘이 섬나라 주민들에게 나침반 사용법을 알려주자 겨울에도 항해를 했고, 도움 되리라 믿었던 일이 커다란 불행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의로 한 일이 안타까운 결과를 맞는 일은 사람 사이에서도 일어나는데요. 그래도 선의였다면, 자신을 아끼는 쪽으로 마음을 추스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국왕을 위해 일할 것을 권유받는 대목에서 라파엘은 " 국왕의 노예가 되라고 부추기는 거냐" 며 "내 평화를 희생하면서 일해 봤자 더 나은 삶을 살지도 못할 것"이라며 놀라운 지성을 보여줍니다. 모어의 '촌철살인'의 인식을 피력해 놓은 대목이라 생각됩니다. 38살에 이런 글을 썼고 57세까지 19년 동안 왕의 측근에서 대법관 자리까지 오른 걸 보면, 그의 앎과 실제 삶이 어땠을지, 저는 짐작도 할 수 없지만 놀라운 사회성 같습니다. 어쩌면 참수형은 본인의 선택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늙은 까마귀에게는 새끼 까마귀가 예뻐 보이는 게 당연하고, 원숭이 눈에는 새끼 원숭이가 당연 예뻐 보인다'는 문장도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가득한 궁정, 지금의 '내로남불' 정치판과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왕 주변에는 왕에게 유리하도록 사람들이 모여 법을 왜곡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며, 판사들은 왕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왕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릴 거라며 현실을 비꼬는 대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2부에서 어떤 안건이 제기된 후, 첫날은 그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모든 안건은 다음 회의로 넘긴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충동으로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나 견해를 막기 위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발효 숙성의 시간은 인식이나 사고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닐 수도 있고, 지난날 내가 원망했던 그 사람이 지금까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지적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공동체에 유용한 사람들이라는 견해도 좋았습니다.
같은 옷을 입고, 근무시간도 같고, 과소비도 없고 화폐도 없는 곳, 금과 은 등 희소성보다, 철의 이용가치를 높게 보고 사용 가치 이상으로 과대평가하지 않도록 주의를 한다거나, 귀금속을 불명예로 여기고 사치품보다 필요한 물품을 가지며 화려한 외양을 부끄럽게 여기는 등등
자본주의와 '반대로 살기 운동'같은 유토피아!.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며 덕의 실천과 올바른 삶에 대한 인식에서 쾌락이 비롯된다는 문장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1부에서 유토피아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배우려는 열정"이라고 서술해 놓았는데요 유토피아 사람들의 분위기가 부러운 부분입니다. 인식이 주는 쾌락은 정신적 쾌락의 상단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500년이 지났음에도 지금보다 앞선 인식을 보여주는 부분인데요. 치료 불가능한 병에는 사제와 국가가 더 이상 고통당하지 말 것을 재촉하며, 고통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현명한 행위라 여기는 부분과, 사후에 누리는 행복이 더 지대하다고 여기는 죽음에 대한 인식도 바람직하게 보였습니다. 의술의 발달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긴 했지만 안락사 문제에 세만은 예외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오만'은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것을 통해, 자기 장점을 저려한다는 인간의 속성을 비판해 놓았는데요.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에서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내게 올 수 없게 하고' 편견은 '내가 타인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생각납니다. 내 자랑의 대상이 되는 '비참한 처지의 사람들'을 양식 삼는 인식에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위안 삼았던 생각이나 무심코 한 말들이 모두 내 오만이었다는 인식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모어의 유토피아가 모두의 유토피아 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토피아'라는 어감은 참 희망적입니다. 이상으로 제 '유토피아'를 위해 욕심내 본 인식들이었습니다.
끝으로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책에 들어가기 전에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사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라파엘로, 메디치가 까지 열정으로 꼼꼼하게 유토피아의 시대적 배경을 짚어주셨는데요. 유익했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수업 좋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위 감상문은 도서관 지혜학교를 종강하며 쓴 소감문이다
3개월 간의 야학 여정이었는데 종강 날 소감 발표 과제가 주어졌고 한 꼭지라도 남기고 싶어 여기다 올려본다.
22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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