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다알리아

구름뜰 2023. 5. 25. 08:43


가을볕 째앵하게
내려쪼이는 잔디밭

함빡 피어난 다알리아
한낮에 함빡 핀 다알리아

시악시야, 네 살빛도
익을 대로 익었구나

젖가슴과 부끄럼성이
익을대로 익었구나

시악시야, 순하디 순하여다오
암사슴처럼 뛰어다녀보아라

물오리 떠돌아다니는
흰 못물 같은 하늘 밑에

함빡 피어나온 다알리아
피다 못해 터져나오는 다알리아


ㅡ정지용 시집, 『정지용 전집 1 시』, 민음사, 2016.

** 지용은 섬세한 언어의 소유자다
살던 시절의 방언들을 시에 그대로 남겨둔 시인
훅~~ 그 시절을 살아보진 않았지만 독특한 정서를 가져다주는 님이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색색이 고왔던 꽃
열 살 무렵이었나
놀다가 놀다가 놀거리가 마땅찮으면
다알리아 목만 뚝 꺾어서
제기차기를 했었다.

가난한 집 맏딸처럼
속이 찼던 꽃

한나절을 차고 놀아도
시시해지지 않던 꽃

경험한 것은
어딘가에 간직되어 있다
그리운 것이 그 시간 속 나인지
동무들인지 모르지만 추억은 그렇다

그때 동무들은 곳곳에서 뿌리를 내렸고
어디서든 잘 피고 있으리라
잘 사는 건 잘 피는 것이기도 하니까

마당에 마른 흙내음을 훅 깨우고 지나가버리던 소나기처럼
추억이 그리울 때가 있다

2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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