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쌀을 씻다가 베란다 쪽으로 올라오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내다 보았다. 이웃 할아버지께서 동네 아이들 다섯 놈과 축구를 하고 계셨다. 폭 10여 미터에 100여 미터 거리가 되는 이 공터는 아파트 건물과 울타리 사이에 있어서 차도 들지 않는데다가 화단이 있어 정원 산책하는 느낌으로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
월드컵과 함께 불어온 축구 붐으로 아이들 축구장으로 활용빈도가 더 높다. 어린아이를 골키퍼로 세워도 부담가지 않을 만큼의 폭이라 취학 전 아동에서 제법 머리통이 큰 녀석들까지 인원수에 상관없이 누구든 공차기에는 넓은 운동장보다 훨씬 정감있는 곳이다. 열명 정도 모이면 공 따라 우루루 몰리는 바람에 비좁다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겐 최고의 축구장이다.
이 조붓한 공간에서 할아버지가 축구를 하고 계셨다. 여섯 살 쯤 된 듯한 두 아이가 양쪽에 골키퍼로 서 있고, 1학년 둘이 한편이고, 유치원생과 할아버지가 한편이 되어 네 명의 선수가 뛴다. 할아버지의 굽은 어깨와 들쑥날쑥한 선수들의 키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처음 보는 활기찬 모습이다. 할아버지는 골기퍼 바로 앞에 선 수비수다. 처음 얼핏 보았을 때는 축구하는 것 같지 않게 길 가장자리 화단을 등지고 서서 구경하는 것처럼 몇 걸음 뛰다가 공이 할아버지 쪽으로 오면 재빨리 걷어 낸다. 할아버지가 걷어 낸 공은 상대편 공격수에게 금방 가로 채이면서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 노소를 초월해서 저렇게 어울려 뛰 노는 스포츠가 또 있었던가.
할머니가 먼저 가시는 바람에 아들내외와 함께 아파트에서 사시는 할아버지는 늘 화단이나 놀이터 잔디밭에 나와 계셨다. 며느리를 위해 공간을 양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파트 화단을 생각하면 할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될 만큼 늘 아파트 마당 어딘가에 서 계셨다. 거의 정지된 듯한 모습으로 그것이 할아버지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계시니 병석에서 자리 털고 일어난 사람 보듯 내가 더 반갑다. 할아버지의 킥이 활기차 보여 쌀을 씻고 저녁밥을 하는 동안 내내 내게도 흥겨운 기분이 전해져 왔다.
우리 막내는 5학년이다. 녀석은 다리통이 얼마나 실한지 단단하기가 가을 무 같다. 줄자로 허벅지와 종아리 둘레를 재보니 어느새 나보다 더 굵어졌다. 살쪘다며 운동부족이라고 퉁을 주곤 했는데 월드컵 열기로 축구를 시작하면서 축구광이 되었다. 생활패턴까지 달라졌다. 컴퓨터 게임이나 딱지치기 팽이 돌리기 등 실내에서 또래끼리만 어울려 놀던 녀석이 학년의 고하를 막론하고 어울리기 시작했다. 한번도 우리 집에 온 적이 없었던 고학년이나 저학년 아이들이 막내를 부르러 오기도 했다. 막내도 축구를 하려면 제일 먼저 아이들을 끌어 모아야 하기에 전화통을 들고 형이나 동생 상관없이 불러 모은다. 너는 누구 불러 나는 누구 부를 테니 하면서 인원파악부터 한다.
어느 때는 짝수가 아니고 홀수로 모인다. 그러면 한 명을 빼는 것이 아니라 하나 둘 셋 하고 손등 손바닥 펴 편가르기를 한 다음 힘이 부친다 싶은 쪽에 나이가 제일 어린 막내를 덤으로 끼워 준다. 그래도 불공정해 보이지 않는 경기가 아이들이 하는 축구다. 이것이 축구의 매력이다. 막내도 형들과 한편이 되어 뛴다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정말 열심히 뛴다. 비록 공이 제게 와 주지 않더라도 협력하고 단결하는 자리다. 골이 성공했을 때는 누구보다도 더 크게 제 편의 형들에게 환호하며 내 보기엔 오바액션으로 골인을 즐긴다. 작전타임도 있는데 이런 것에도 전혀 빠지지 않고 기꺼이 동참하여 한 팀이 된 동질감을 즐긴다.
이렇게 맘껏 뛰 놀다 4층인 우리 집 베란다 밑에 모두 모여 선창으로 아들 녀석이 하나,둘, 셋, 하고 박자를 세면 일제히 고함을 지른다.
"권이 어머니, 권이 어머니."
두 손을 확성기 갖다 대듯 입에 모은채, 나는 녀석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얼른 냉장고로 가서 패트병에 가득 채워 둔 물병을 꺼낸다. 그리고는 그 소리가 듣기 좋아서 애가타서 두어 번 더 부를 때까지 내다보지 않는다. 그리고는 이제사 들었다는 듯 슬며시 얼굴을 내밀면 녀석들은 반색하며 어쩔 줄을 모른다. 꼭 새끼제비가 엄마가 물고 온 먹이를 받아 먹기 위해 노란 입을 벌리고 짹짹거리는 형상이다. 부르는 이유는 매번 같다.
"물 주세요, 물 주세요."
그럴 줄 알고 얼른 손에든 물병을 내 보이면 아이들은 환호한다. 물통을 4층 베란다에서 잔디밭으로 던진다. 뚜껑 열고 퍼붓듯이 들이키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에게서 올라오는 싱싱한 기를 받은 듯 기쁘다. 매번 녀석들이 우리 집 베란다 밑으로 와서 소리지르는 것이 나는 싫지 않다. 아마 녀석들도 내가 저희들에게 물병 던져 주는 일을 즐긴다는걸 눈치챈 모양이다.
아이들과 이렇게 축구와 인연이 된 건 아마도 월드컵 덕분인 것 같다. 16강에 오르고 8강 전이 있던 날 아이는 운동장에 응원하러 가기로 약속이 다 되어 집으로 왔고, 친구들과 친구여동생까지 데리고 와서 얼굴에 페인팅을 요구했다. 한동안 서랍에서 잠자던 포스터칼라 물감으로 복숭아 빛 고운 뺨에 동그란 태극도 그리고 붉고 푸른 획을 긋기도 했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4강 응원까지 우리 집에서 준비를 했다. 붉은 악마 티셔츠에 태극망토는 기본이었고 붉은 사각수건은 두건으로 매고 대~한민국을 맘껏 사랑하고 응원했다. 그렇게 녀석들과 하나되어 즐긴 것이 오늘의 물통응원까지 이어진 셈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가 뜸해졌다. 여름방학 때는 해거름이면 모여 축구를 하던 녀석들로 시끌시끌하더니 개학한 뒤로는 방과후 학원 가느라 노는 아이가 없는 탓이다. 이제 곧 겨울방학이다. 춥기야 하겠지만 녀석들은 축구의 매력을 알기에, 붉그레한 뺨과 언 손을 비벼 대며 협력도 책임감도 준법정신도 배우면서 유년시절의 추억을 만들 것이다. 나는 따듯한 물을 준비할 것이다. 2002년 어느 가을 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