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수필

앞치마

구름뜰 2007. 10. 30. 19:47

 아동복 매장 카운터에서다. 그녀는 점원아가씨와 실랑이를 벌이고 잇었다. 어린아이를 업은 노인과 그녀의 손에 딸린 서너 살 쯤 된 여자아이까지 일행은 모두 넷이었다.  노인과 닮은 그녀의 모습에서 한 눈에 모녀지간임을 알 수 잇어�. 노모의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초라한 행색으로 보아 아마도 시골에서 달네 집에 다니러 오신 듯 했다. 굽은 등 아래로 미끄러지는 아이를 양손으로 치받치며 노모도 함께 사정을 하고 있었다.

 

  "아가씨 그렇게 좀 해줘유. 있는 게 단데."

 그녀가 고른 옷은 반바지 하나에 면티셔츠 2장 해서 22,500원이었다. 동전지갑을 뒤집어 보이며 100원짜리 아홉에 50원자리 둘까지 합해 22,000원 500원이 모자라지만 그냥 달라는 거였다. 점원은 정찰제라며 돈이 안되면 옷을 하나 빼란다. 사장님도 안 계시고 자기는 어쩔 수 없단다. 그들은 다음 차례인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랑곳 않고 양쪽 다 한치 양보가 없었다.

 

  "애기 엄마. 제가 오백 원 내 드리면 안될까요?"

  "고맙습니다. 은행가면 되는데."

  "아가씨 제것 계산할 때 500원 더 플러서해 계산하면 되겠죠?"

 아가씨는 상기된 얼굴로 군말 없이 포장해 주었다. 고맙다며 노모와 그녀는 내게 싱긋 웃음을 내어 보였다. 그 웃음이 씁쓸하게 내게 와 닿았다.

 

 500원은 큰 돈이 아니데 끝까지 안 된다는 점원이나 노모까지 세워 두고 실랑이를 벌인 그녀나 다 융통성 없기는 매한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정찰제라는 것이 그렇게 고약한다. 편리 하자고 만들었겟지만 그렇게 인색하게 지켜야 할 규칙이던가. 잇속 채우기에 급급한 점원이나 자리에 없는 사장이나 500원만큼의 여우가 없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참 각박한 세상이다.

 

 가게를 나와 저 만치 앞서가는 모녀일행을 보앗다. 어디로 갈까. 집은 시장에서 가까울까. 점심때인데. 물온 그녀는 은행으로 갈 서이고 그녀의 어머니께 맛잇는 점심도 대접 할 것이리라. 친정엄마라 편해서 그리고 그 노모도 딸의 그런 모습이 안쓰럽다거나 못마땅하다기보다는 싸게 사야지 하는 생각에 충분히 동조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도 나를 위한 일에는 늘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많이 번거롭거나 힘든 일이어도 당신께서 할 수 있는 일이고 딸을 위한 일이면 기꺼이 해 주셨다. 나도 그럿에 익숙해져서 살았다.

 시집 가는 날 엄마는 내게 당부했다.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 주신 것만으로도 무조건 시부모님께 감사할 일이니 잘해드려야 한다고. 그런 탓에 며느리로서의 의무감에다 잘해야 되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하지만 친정 엄마를 위해서는 그런 결심을 해 본적이 없이 살아온 나를 시집와서 돌아보게 되었다. 시집온 첫새벽 선잠 깨어 낯선 부엌에 들어가 시어른의 아침밥상을 차리면서였다. 

 

'아! 친정부모님께는 한번도 해 드리지 못했구나!" 친정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나 똑같이 소중한 부모님이란 걸 뒤늦게 깨달는 것이다.  엄마니까 당연히 그런 줄 알았고 반찬투정에 입맛 타령만 할 줄 알았지 아침밥상의 수고와 정성까지는 생각을 못햇던 것이다. 생신이 되어도 부모님의 아침상을 한 번도 차려 드린 적이 없다. 진작에 아침상을 봐 드렸다면 얼마나 흐뭇해하고 기뻐하셨을까. 뒤늦은 자각이었다. 한번도 그런 것을 요구하지도 강조하지도 않으셨던 친정부모님께 잘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시집온 아침에서야 들엇던 것이다.

 

 친정에 갈 때면 나는 앞치마를 준비해 간다. 도착하면 곧바로 부엌으로 들기 때문이다. 엄마가 차려 오는 밥상을 젊은 내가 받기가 왠지 미안한 거다. 시댁에서 시어머니의 밥상을 받는 일이 언감생심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친정엄마에게도 그런 마음이 든다.

 엄마는 친정에만 오면 부지런 떠는 내게 시집가서 철들었다며 그만 하라고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냉장고 청소며 손 가야 될 곳을 찾아 정리하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맏딸만 다녀가면 부엌이 훤해진다고 동네방네 자랑하신다.

 

 명절 끝에도 시댁에서는 지쳤다가도 친정에만 도착하면 부엌으로 든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시들시들하더니 팔팔해진단다. 사실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친정행에 오르면 없던 기운까지 생긴다.

 남편은 이젠 좀 그만 하란다. 처남댁가지 있으니 쉬었다 오면 되지 꼭 가정부마냥 청승 떤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엄마와 함께 있는 동안은 엄마를 위한 일에 시간을 쓰고 싶다. 그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못내 아쉬워 더 부지런 떨 수밖에 없다. 엄마를 위해 앞치마를 적시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2002년 한양수필 11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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