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수필

초인종

구름뜰 2007. 10. 30. 19:28

 10여 년 전 아파트 생활이 처음이었던 때다. 지금처럼 아파트 관리비 납입 영수증에 TV시청료가 부과되지 않았고 징수원이 가가호호 방문하며 받으러 다닐 때였다 다세대주택에서 살 때는 방만 다르지 마당이나 화장실을 공동으로 썼기에 이웃과 별개로 생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기 엄마?"하고 방문을 슬쩍 여는 것도 예사였고 그러면 내 상황과는 상관 없이 "들어오세요"하고 맞이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파트에는 초인종이 있어 편했다. 방문하는 이가 가족이거나 약속된 친구라면 반갑게 맞이할 수 있다. 불청객이면 확인해 보고 열어 주지 않아도 되는 사생활이 보장되는 문화여서 좋았다. 나는 왠지 예의를 갖춘 것 같은 '딩~동' 이소리가 맘에 들었다.

 

 이사 온 지 한 달쯤 된 어느 날 오후 초인종에 불이 났다. 딩동딩동딩동딩동 연거푸 네댓 번이나 울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급한 일이 일어났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벌떡 일어나 달려나갔다. 누구냐고 물을 새도 없이 문을 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작은 키에 통통한 50대 가량의 남자다. 그는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모는 내게 대뜸 종이쪽지 한 장을 들이 밀었다.

  "시청료 받으러 왔슴다."

 맥이 풀리니다는 경우가 이런 경우일 것이다. 너무도 태연한 얼굴로 방문 목적을 얘기하는 그 징수원이 정말 능청스럽게 보였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기도 전에 화가 먼저 났다. 하지만 그 징수원에게 초인종을 비상벨 울리듯이 요란하게 눌러대냐고 말하지도 못했다. 순간적으로 당한 일이었고 놀란 것은 당신 몫이고 시청료나 빨리 주시오 하는 그 당당한 얼굴 대문이었다. 받으러 왓다니 줄 수밖에. 주고 나니 더 불쾌해졌다. 당연히 내야 할 돈이지만 굳이 그렇게 놀라게 하고 받아가야 한단 말인가.

 한 달쯤 뒤 또 초인종에 불이났다. 나는 또 문을 열었다. 그 징수원이다.

  "시청료요?"

 나는 또 그렇게 그 징수원의 초인종 템포에 맞춰 문을 열어 주고 말았다. 그러기를 서너 달. 오기가 생겼다. 다음에 오면 아무리 급하게 눌러도 아주 느긋하게 나가서 누구냐고 묻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기로...

 

 이사온 지 6개월 쯤 되었을까. 그 날도 징수원은 당당한 모습으로 다녀갔다. 초인종 수법에 말려들지 않겠다고 벼르던 것이 여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매번 화들짝 놀라는 것도 그렇고, 잠든 아이까지깨서 우는 것도 그렇고, 징수원에게 초인종 그렇게 누르지 말라고 말 한마디 못하고 돈만 준 것도 그렇고 나는 제풀에 더 화가 나 있었다.

불쾌한 감정이 뒤엉켜 폴발 일보 직전이었다.

때마침 윗 층 아줌마가 놀러 왔다.

  "어떻게 된 인간들이 남의 집 초인종을 그렇게 마구 잡이로 눌러 대는지. 징수원이나 집배원들은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어. 정말,"

 

 나는 징수원에게 쌓인 불쾌함을 집배원까지 싸잡아서 터뜨렸다. 평소에 잘 쓰지도 않던 '인간들'이라는 단어까지 곁들여 불쾌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쏟아 낸 것이다. 그때 내가 왜 집배원까지 굳이 끌여들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오로지 그 징수원 때문에 화가 났을 뿐인데.  "애들 아빠도 그래. 배달하는 사람은 다 그런 편이야. 안 그러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나는 그때서야 그녀의 남편이 집배원이란 사실을 알아�. 우체국에 근무하는 줄만 알았지 집배원일 줄이야. 그녀는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화난 나를 달래듯 입장 설명을 했다. 초인종을 급하게 누르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리게 하거나 안에 있으면서도 문을 열어주기 않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맡은 물량을 제시간에 배달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집배원이란 말만 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부끄럽진 않았을 것을 순간 적인 감저에 생각없이 내 뱉은 단어가 나를 변명의 여지도 없게 만들었다. 쥐구멍을 찾는 심정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녀는 그럴 수도 있다며 이해해 주었다. 그녀에게 사실은 집배원은 아무 상관없고 징수원에게 느낀 불쾌감이라고까지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민망해서 내가 한 말을 뒤집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해를 바란다는 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해지며 작아지고 볼품 없어지는지 나는 그때 처음 느꼈다. 그리고 이해를 구해야 할 만한 일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이해심 많은 그녀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남편과 아이들까지 어울려서 좋은 이웃으로 지내게 되엇고 지금 사는 동네로도 같이 이사 왓다.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의 위력. 그렇게 속수무책일 수박에 없엇던 낯뜨거운 경험으로 말조심을 하게 되엇다. 한 번 내뱉은 말는 내가 한 말이어도 내 권한 밖인 경우가 많고 상대가 평가하는 것인지라 생각없이 함부로 말했다가 내 위상이 형편없이 추락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한 계기가 되었다.

 

2002년 한양수필 11집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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