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수필

연작수필 '외가'-1 외삼촌

구름뜰 2007. 12. 13. 10:34

  외삼촌은 5대 독자다. 외할아버지께서 객사하시기 전 외할머니 뱃속에 남겨 두고 간 자식이었다. 음력 사월 스무 엿샛날 외할머니는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았다. 유복자 외삼촌은 나와 생일이 같다. 물론 나는 열 일곱해나 뒤에 태어났지만 외삼촌과 나는 공통분모같은 끈끈한 유대감으로 생일이면 전화를 걸어 축하를 주고 받는다. 특히 가족과 소원한 때이거나 주변반응이 기대에 못 미칠 때는 자축의 의미가 더 있다. 


 외삼촌은 귀한 아들이라 병역도 면제되었고 엄청 귀하게 컸다는 것, 그런데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짓을 해 외할머니 속을 많이 썩였다는 것 등 외삼촌의 어린 시절을 보진 못했지만 엄마를 통해 귀동냥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외삼촌은 스물을 갓 넘긴 청년시절부터다. 두 분만 사는 외가는 친척이 없던 터라 우리가 가면 귀한 손님이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모자의 일상은 예삿일로 넘기기엔 파격이었다. 다 큰 아들을 야단치는 외할머니, 그 어떤 으름장에도 기죽지 않고 어깃장 놓는 외삼촌, 모자의 구심점이 어디였는지 몰라도 극과 극을 치닫는 듯한 싸움에 처음엔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벌해도 번번이 외할머니의 완패로 끝나는 단막극이었고 우리에겐 곁불 맞을 일도 없음을 알고 서서히 내성이 생겨 볼만장만했으며 싸움의 농도가 진해 질수록 우린 앙큼하게도 그 스릴을 즐기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과격할수록 외삼촌의 농익은 재치와 순발력은 탁월했다. 동생과 나는 외삼촌이 어떻게 위기를 모면할지 결국엔 외할머니를 웃게 만드는 그 넉살을 어느 시점에서 발휘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구경했다. 외삼촌은 아무리 혼나도 마지막엔 외할머니의 맘까지 풀어 주는 재주가 있었다  


 외삼촌은 늦잠자는 데는 단골이 배기어 해가 중천에 뜨도록 구들장을 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새벽잠이 없는 외할머니는 하루도 봐주질 않고 핏대 세워 가며 깨웠다. 부르다 부르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면 외할머니는 마당에 있는 지게작대기를 들고 마루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 때까지 뒹굴던 외삼촌은 쳐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귀신같이 포착! 잽싼 순발력으로 쪽문으로 도망쳐 나왔다. 그 때의 외삼촌 모습은 여름엔 팬티차림이요 겨울은 내복바람이었다. 목욕탕에 불났을 때나 볼 수 있는 모습을 외가에선 아침마다 구경했다. 맞으면 반 쯤 죽을 것 같은 지게작대기의 굵기와 크기에도 우리 만 주눅들었을 뿐, 이 또한 한번도 외삼촌이 순순히 맞는 걸 본적이 없었으니 그것은 외할머니의 강한 의지 내지는 의사표현의 도구에 불과했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뒤쫒다가 화가 치밀면,
 "에이, 호랭이가 물어갈 놈의 자식" 이라고 했다.  
 "호랭이가 어-흥 하면, 어이구 안돼요 우리 외동, 날 잡아가소 할걸"
하고 염장을 질렀다. 모든 걸 외할머니가 감당해 주리라는 도착된 믿음이 오히려 외삼촌에게는 해악이 되었으리라는 짐작은 내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확실해졌다. 


 외삼촌은 언제나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혈기와 열정이 넘쳤다. 그 열정이 외할머니의 뜻과 어긋나지 않았다면 외삼촌은 크게 성공했으리라. 하지만 청년 외삼촌의 주파수는 늘 엉뚱한 곳을 향했던 것 같다. 외가는 마당이 깊었고 그에 반해 섬돌이나 마루는 높았다. 우리가 마당에 서면 마루 밑이 눈높이로 들어 왔는데 그 곳에는 항상 잘 닦인 군화가 있었다. 나는 저 군화가 어디서 났을까 궁금했다. 분명 외삼촌이 군대에 가지 않은 것을 동네사람들도 다 아는데. 외삼촌이 그 군화를 신는 일은 정말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변죽이 좋은 외삼촌이 그런 일에 개의치 않는 건 당연했고 역시 외삼촌은 군화를 제일 즐겨 신었다. 가마니처럼 뻣뻣한 청 나팔바지에 타이트한 청 점퍼, 그리고 청결과는 담 쌓은 듯한 장발. 외출이 있는 날은 섬돌 위에다 안방의 큰 거울을 내다 놓고 마당에서 온갖 폼을 다 잡았다. '껄렁' 그 자체였다.  


 커다란 건전지가 묶인 구제 라디오를 끼고 노래가 흥이 나면 우리를 마루에 앉혀 놓고 최신 유행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외삼촌에겐 식을 줄 모르는 흥이 있었지만 우리에겐 그 라디오 방송에서 아나운서가 하는 얘기가 도통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 춤이란 것도 혹 외할머니에게 들키면 어떡하나 걱정만 앞섰다. 외할머니가 그토록 외삼촌을 혼 내는 것도 늦잠자는 것보다 못한 일에 군눈 팔며 쓸데없이 쏟아 붓는 열정이 못마땅해서 였으리라는 짐작도 할 수 있었다. 


 외삼촌 오십되던 해, 외할머니는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외삼촌이 얼마나 정성스레 수발을 들었는지 동네사람들이 모두 효자라고 저런 아들 없다고 했지만, 외할머니 상여 나가던 아침 외삼촌은 대성통곡을 했다.
 "오매, 오매 가면 나 혼자 어찌 살라고 가요"
 젖먹이 아이처럼 외할머니의 상여를 잡고 매달렷다. '나 혼자, 나혼자.'를 외치며 통곡 했다. 그 때의 외삼촌의 절규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건만 허방다리 짚은 듯 울부짖는 '나 혼자'라는 말속에서 외할머니가 외삼촌에게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었는지, 그것은 반 백년 외삼촌만 보고 사신 외할머니에게 갚아야 할 은혜가 하늘 같이 남았음을 안타까워하는 몸짓이요 일찍 가신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었다. 
 '나 혼자'
 그것은 자신에 대한 원망이요 통곡이 아니었을까!   

 

2003년 구미수필 창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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