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깍이로 공부를 시작한 지기들과 가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내륙의 바다라는 충주호는 초행길이다. 그래서 일까. 이른 아침 고지대 고속도로는 안개 속에 묻히어 영화에서 본듯한 미지세계로의 통로 같았다. 늦가을 언저리에서 갑자기 찾아온 된서리로 응달진 곳 초목들은 하얀 상고대가 끼어 있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산은 가는 곳마다 단풍이 들어 가을경치로는 절정이었다.
일행 중에 야생화를 잘 아는 이가 있었다. 나는 꽃 이름이나 나무 이름에는 기억력과는 상관없는 문외한이다. 충주호 물가에서 꽃은 자취도 없고 잎만 붙어 있는, 내가 보기엔 흔한 잡풀같은 해국을 그녀는 알아 보았고, 자운영도 내게 알려주었다. 꽃도 생소하고 이름 또한 익숙치 않은 내게 그 꽃의 특성을 일러주었다. 그리고는 꽃에게도 꼭 한마디 건네는 것이다. 참 고운 모습이었다. 그녀의 이름도 순화다. 순한 꽃. 그녀가, 그녀의 이름이 야생화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산을 오르면서도 그녀는 줄곧 풀이나 꽃 나무에 눈길을 주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손길까지 놓치지 않았다. 야생화 편에서 생각해 보니 이런 여행객이면 참 반가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 준다는 것만으로도 향기로울 이유가 충분하므로. 나처럼 눈길은커녕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고 산행이랍시고 부지런히 올랐다가 부지런히 내려오는 것으로 끝인 여행객은 오나마나 한 불청객일 것이다.
산을 앞서 내려가던 그녀가 풀밭에 앉아 있다. 나를 기다린 것이다. 하산 길에 풀밭에 자주빛으로 다소곳 핀 용담을 발견하고 그 꽃을 내게 소개해 주려고 기다린 것이다. 종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양이다. 한떨기에 손가락 한마디쯤 될 듯한 작은 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는 것이다. 꽃꽂이 작품전에서나 한두 번 본 듯 한데 용담이란 이름이 있을 줄이야.
내가 아는 야생화는 얼마나 될까. 열 손가락 채우기가 쉽지 않을 듯 하다. 꽃 이름이나 습성, 환경 이런 것에는 관심도 없이 살았다. 산이나 들에 지천으로 피는 것이 야생화라는데, 자운영 같은 것은 군락으로 핀 곳을 멀리서 보면 자주 구름이 풀밭에 내려앉은 듯 아름답다는데, 고개 들어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렇게 까막눈이진 않았을 것이다.
나무도 그렇다. 느티나무, 두충, 동백, 사철나무 등이야 확실하게 구분하지만, 그 외엔 책에서만 익숙한 자작, 측백 ,치자, 느릅, 모감주, 물푸레, 너도밤나무, 닥나무, 계수나무 등 이름만 익지 까막눈인 나무가 얼마나 많은가. 자연에 이렇게 생경한 나를 본다.
산에 살면 산국화 들에 살면 들국화,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야생화는 구절초다. 몇 년 전 월간지를 정기구독 하면서였다. 그 책의 표지나 첫머리 몇 장은 계절에 맞는 풍경, 과일, 꽃, 아이 등의 탐스럽고 아름다운 사진들이 실린다. 들국화로만 알고 있었던 하얗고 청초한 그 꽃이 구절초라는 것은 순전히 그 책을 통해서였다. 음력구월에 피는 절개있는 꽃이라서 구절초라 하나보다 이렇게 연결 지어 외운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 여행길이나 달리는 차안에서 무더기로 핀 구절초를 보면, "어머! 저꽃 좀 봐, 너무 예쁘지. 꽃 이름이 뭔지 아니? 구절초란다." 나는 남편과 아이에게 매번 우쭐대며 묻지도 않는 이름을 알려 주곤 했다. 안다는 건 그렇게 반가운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오늘 본 해국과 자운영 용담 만이라도 확실히 알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키작은 해국은 이름에서 풍기듯 바닷가 해안에서 군락으로 잘 피는 야생화였다. 가을 들녘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구절초와 꽃 모양이나 색깔이 거의 같고 다른 점은 잎이 도톰하여 꽃 모양의 초록 선인장이 밀가루를 뒤집어쓴 듯 뽀얀 잎이었다.
자운영은 꽃이 여리고 앳되다. 토끼풀과 비슷한데 자색이라 훨씬 신비감을 준다. 어린 새순이 꽃이 필 무렵까지 쇠지 않고 부드러워 나물로도 좋단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시어머님과 함께 밭두렁에서 뜯은 기억이 난다. 꽃이 피기 전이었다. 연초록으로 무성한 어린순을 맛있는 들나물 이라고만 하신 것 같다. 그 날 저녁 그것을 살짝 데쳐 된장에 참기름 양념을 하여 버무려 먹었는데 연한 향기가 독특했었다. 아마도 그것이 자운영의 꽃향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운영 씨앗은 시력도 좋아진다고 한다. 시력은 회복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사실이라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용담도 약재다. 뿌리가 용의 쓸개처럼 쓴 탓에 '용담'이란다. 열을 내리고 염증을 삭혀 간염에 먹으면 회복이 빠르다니 이 역시 놀라운 일이다. 야생화에 이렇게 큰 효험이 있을 줄이야.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사물을 대해왔던 탓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이렇게 눈이 트이는데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딱 들어 맞는다. 이제는 오늘 본 해국이나 자운영 용담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얼굴도 이름도 알아보는 친근한 사람이 되어 주리라.
그녀가 그랬다. 내가 누구라고 잘사네 못사네 뽐낼 것없이 저것이 나를 몰라도 내가 저것을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좋다고, 야생화 공부를 할수록 어딜 가도 편안하단다. 어느 산하를 가도 그녀는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아는 친구들이 지천이니.
2003년 구미수필 창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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