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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복식조

구름뜰 2009. 2. 25. 12:52
환상의 복식조` 20년 우정 이문세· 이영훈
1980년대 중반. 가요계에 ‘환상의 복식조’가 탄생했다. 가수 이문세(42)와 작곡가 이영훈(41).

“너희들 둘이 손발을 맞추면 그럴듯한 그림이 나올 것 같아” ‘신촌블루스’의 엄인호가 중매쟁이였다. 20대의 혈기로 들끓던 시절. 음악에 대한 열정이 삶의 전부였던 두 사람은 첫눈에 반했다. 무명가수 이문세에게는 기타 하나와 낡은 포니승용차 한대가 전부였다. 이영훈은 손때 묻은 피아노가 전재산. 두 사람은 서울 수유리 이영훈의 자취방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주식은 라면, 꿈은 좋은 노래. 곡을 쓰고 부르고, 또 쓰고 고쳤다. 85년 11월. 이문세의 3집 앨범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콤비플레이에 의해 탄생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요계에서는 소위 세미트로트곡이나 포크송이 전부였어요. 클래식한 느낌의 팝발라드 곡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 의심했죠”
결과는 대박. 1백5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87년 봄 나온 4집 ‘사랑이 지나가면’은 가요 음반사상 최초로 2백만장을 돌파했다. 이후 총 9장의 앨범을 같이 작업하면서 새로운 화법과 멜로디를 가진 노래들로 가요계를 기름지게 했다.

‘휘파람’ ‘광화문 연가’ ‘시를 위한 시’ ‘그녀의 웃음소리뿐’ ‘사랑이 지나가면’ ‘종원이에게’ ‘이별 이야기’ 등. 이들 콤비는 80년대와 90년대 가요계에 잇단 히트곡을 내놓으면서 적어도 1천만장 이상의 앨범을 팔아치웠다.
실과 바늘이 만난 지 18년째. 두 사람은 그렇게 청춘을 보냈고 어느덧 불혹을 넘겼다. 이들 콤비는 이제 가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일관된 흐름을 가진 히트곡에서 씨줄과 날줄로 잘 짜여진 서정과 서사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이영훈의 노래가 가진 최대의 장점은 서정성이다. 일상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언어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랑을 얘기하되 요란하지 않게, 가식적인 화법보다는 진솔한 화법으로 담아냈다.

이문세의 낮은 중저음은 이영훈의 노래를 담아내는 데 최적의 보컬이었다. 때로 속삭이듯이, 연인과 마주앉아 사랑을 고백하듯이 그렇게 노래한다.
“그의 노래엔 상업적 고급성이 아닌 문화적 고급성이 있어요. 어떤 가사와 멜로디를 써줘도 이해하기 쉽게 들려줍니다”(이영훈)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다분히 여성취향적인 감성의 소유자죠. 특히 시적인 언어감각은 당대 최고입니다. 이영훈이 없었다면 이문세도 없었을 겁니다”(이문세)

삶이 허허로운 벌판 같았던 80년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두 사람의 노래가 사람들의 빈 마음을 채웠다. 발라드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고 발아시켰다. 덕분에 이승철 변진섭 신승훈에서 최근 조성모에까지 이어지는 계보가 형성됐다.
이문세의 13집 앨범 ‘Wad People’. 이영훈과 손잡고 만든 앨범이다. 김현철과 함께 만들었던 ‘솔로예찬’, 이적과 함께 만들었던 ‘조조할인’이 잠시의 외도였다면 이번 앨범은 초심의 발라드로 돌아간 앨범인 셈이다. 이문세는 10년 넘게 진행했던 라디오 DJ를 포기했고, 이영훈은 다시 돌아온 이문세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제 20대의 감각을 노래에 담는다는 건 불가능하죠. 자연스럽게 중년의 감성을 노래에 담았어요. 한번도 ‘사랑한다’고 얘기한 적이 없는 아내에게 노래로 사랑을 고백했고, 세상사를 넓은 가슴으로 이해하는 노래도 있어요”
두 사람 모두 80년대 말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혼, 공교롭게도 아들 하나씩을 두었다. ‘My Wife’는 오랜 시간 군말없이 함께 해준 아내에게 바치는 발라드곡. 팝발라드곡 ‘기억이란 사랑보다’는 중년의 한가운데서 느끼는 삶의 단상을 담고 있다. ‘웨딩송’이란 부제가 붙은 ‘아름다운 사랑’은 새출발하는 연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노래다.

여기에 ‘일기예보’ 출신 강현민이 이문세에게 선물한 ‘Memory’와 김건모와 주고받는 듀엣이 돋보이는 ‘여인의 향기’ 등이 실려 있다. ‘구름 위의 산책’ ‘비버리힐스의 아이들’의 스테디캠 오퍼레이터인 켄 페로가 촬영한 뮤직비디오 또한 새 앨범에 기울인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 두 사람은 앨범을 내기 전 ‘시음회(試音會)’를 열어 젊은 가수들 못지않은 발상의 새로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두 사람의 주변에는 선의의 경쟁자가 없다. 젊은 후배들로부터 ‘환갑(?)이 지나 노래하는 선배’로 불리는 이문세는 물론 이영훈도 현역에서 활동하는 동료 작곡가가 거의 없다. 그만큼 가요계에 40대 현역이 전무한 셈이다.

“같이 작업하면서 20대의 열정을 되찾은 느낌이었어요. 머리를 굴려서 만든 음악은 팬들이 금세 알아봐요. 마음에서 우러나온 음악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이죠”
유난히 긴 얼굴의 이문세와 얼굴이 큰 이영훈. 외양은 달랐지만 그들의 마음은 동색(同色)이었다. 회색도시를 음악으로 색칠하고 싶어하는 페인트공이니까. 그것도 온통 초록으로 말이다.
경향신문 기사·사진 제공 2001년 4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