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스승의 날을 앞두고

구름뜰 2009. 5. 11. 20:05

  "어머니, 스승의날 학교에서 학부모 일일교사 수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한시간만 내서 아이들에게 좋은 얘기좀 들려 주세요."

  이런 황송할데가 있나! 작은아이의 담임선생님 전화다. 이런 요청은 처음이다. 

  순간 스쳐가는 우리 아들놈 얼굴..  그 녀석 하나도 내맘대로 요리가 안 될 때가 많은데, 40명이

나  되는 아이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라면 무엇이 있을까. 레파토리의 부재가 느껴지면서 순간 답이 없음을 재바르게 인식하는 나!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까칠하면서도 의아해 할 녀석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왔다.  거절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지 얼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 제가요..... 제가, 어떻게...요?"

 "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 생활속 이야기 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 중 3이라면 몰라도.... 아니 차라리 어머니수업이면 몰라도 고3 녀석들 40명은 자신 없어요  

  권이 녀석 하나도 쉽지 않은 걸요.."

  "권이 때문이라면 다른 반에 가서 하셔도 됩니다. 금요일까지니까 오늘중으로 한번 생각해 

    보시고 답 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아들놈을 무서워하는 건지, 아니면 그 또래 아이들 숫자에 대한 공포감인지..내가 어떻게라는 벽같은 것이 느껴졌다. 자신없는 건 자신 없는거다. 어떤 주제여야 할지. 아이들을 사로잡을 자신이 없다. 제대로 해내지 못할 일은 애초에 맡지 않는 편이다. 맡았다 하면 나는 내 맘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들볶는 일인줄 알기에 거절해야 했다.

   선생님의 부탁은 정말로 감사한 일이지만 그 역량이 못됨을 실감하니 다른 학부모를 알아봐 달라고 공손히 거절을 했다. 전화를 끊고도 진땀이 났다.

  

  고 3이 되고 학습량이 많아진 아이는 예전보다 까칠해졌다. 

 생활패턴도 공부에만 매이다 보니 피로에 찌든 모습 일색이다.  어느 때는 똥밟은 얼굴로 나를 쳐다 볼 때도 있다. '어휴.. 저걸 그냥.' 속에서 울컥 할 때도 있지만 그 까칠함이 나와 상관 없는 경우엔 나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그것이 현명한 처신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기에 내버려둔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고 제 풀에 난 화는 제스스로 풀어 낸다. 섣불리 잘못 건드려 울고 싶은 놈 뺨 때리는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내녀석들이란 담백해서 딱히 해 줄 말이 없을 때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약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어쨌거나 이 나이 먹도록 아들친구들에게 한시간 이야기 하는 것도 자신이 없어서 단박에 진땀흘리며 거절한 나 자신을 돌아본다. 이럴 때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기꺼이 해 드리지요."  승낙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아들 놈 운운했지만 부끄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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