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아름다운 마무리 - 법정

구름뜰 2009. 6. 19. 11:59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믿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그 물음은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 중요한 자각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나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내려놓지 못할 때 마무리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윤회와 반복의 여지를 남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진정한 내려놓음에서 완성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의 본질인 놀이를 회복하는 것.

심각함과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천진과 순수로 돌아가 존재의 기쁨을 누린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안다.

과거나 미래의 어느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순감임을 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 둔 채 지금 이순간을 받아들인다.

또한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용서와 이해와 자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일깨운다.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자연과 대지. 태양과 강, 나무와 풀을 돌아보고 내안의 자연을 되찾는다.

궁극적으로 내가 기댈 곳은 오직 자연뿐임을 아는 마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개체인 나를 뛰어넘어 전체와 만난다.

눈앞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나 자신이 세상의 한 부분이고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는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 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삶의 예속물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거듭난다.

진정한 자유인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 향기와 맛과 빛깔을 조용히 음미한다.

그것은 삶에 새로운 향기와 빛을 부여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스스로 가난과 간소함을 선택한다.

맑은 가난과 간소함으로 자신을 정신적 궁핍으로부터 바로 세우고

소유의 비좁은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아름다운 마무리 - 법정>

 

지난 1월 중순경에 이 책을 읽었다.

<홀로사는 즐거움>이후 근 4년만에 나온 책이라 더욱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어제 책장앞에서 하릴없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무언가를 찾다가

문득 눈에 뜀과 동시에 스님 생각이 났고 다시 정독하게 된 책이다.

 스님책은 매번 정독이지만 읽을 때마다 새롭다.

 

돌아보면 내게 지나온 날들은 책읽은 기쁨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열린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정되어 진다.

그외에도 부수적인 많은 이로움이 있다.

지식은 보너스 같은 것이다.

책읽는 즐거움은 사람을 풍요롭게 한다.

책을  읽어 가장 이상적일려면

책향기가 내 안에 스며들도록 책을 읽으면서

그 내용이 자신의 삶으로 이어지도록 애쓰야 하지 않을까! 

 

<아름다운 마무리>는 육체에 찾아온 병마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스님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 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 들이는 일이라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또한 단순해지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할 줄 안다.

불필요한 것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기 자신과 더욱 가까워진다.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분명하게 가릴 줄 안다. 

문명이 만들어 낸 온갖 제품을 사용하면서

'어느 것이 진정으로 내 삶에 필요한가, 나는 이것들로 인해 진정으로 행복한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하여 불필요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것.

그리고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다.

우리 앞에 놓인 이 많은 우주의 선물도 그저 감사히 받아 쓸 뿐,

언제든 빈손으로 두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머지않아 늦가을 서릿바람에 저토록 무성한 나뭇잎들도 무너져내릴 것이다.

그 빈 가지에 때가 오면 또다시 새잎이 돋아날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아름다운 마무리 - 법정>

 

 

스무살 무렵, 내게 영적인 멘토가 있었다면 

정신적인 스승이 있었다면 

아마도 법정스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의 소개로  <무소유>를 읽게 되고 

 감로수가 있다면 이런 맛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스님의 책들을 섭렵해갔다. 

세상을 이런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분도 있구나. 

살수도 있구나...

책에서 만나는 스님은 경이로운 대상이었다.

 스무살 그 풍부했던 감성은 책속에서 만나는 대상에 몰입하기에

가장 좋은, 가장 아름다운 때였는지도 모른다. 

종교적인 신념을 넘어서 무욕의 삶을 사는 모습,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정진함에도,

때론 꽃잎처럼 풀잎처럼 여릴만큼 섬세하고 순수한 인간적인  모습까지 

책속에서 만난 스님은 존경하지 않을래야 않은 수 없는 그런 대상이었다.

 

나도 덩달아

스님이 좋아하는 <어린왕자>도 좋아하게 되고

 스님 책 이야기들에서

스님의 생각을 공유하게 되는 즐거움을 맛보면서

 책읽기는

불교의 그 어느 경전보다도 나에게 정신적인 자양분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다가 그 즈음(24~5년 전쯤일 것이다) 불일암에 갈 일이 생겼었다.

 당시  불교청년회에서 스님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자 하는 뜻을 세웠고

불일암까지 임원진 4명이 스님의 허락을 얻기 위해 답사를 가게  된 것이다.

내게 무소유를 소개해준 친구는 그 이전부터

스님을 잘 알고 있어서 그 친구 덕분에 낸 아이디어였고 물론 함께 동행했다.

그 당시만 해도 대구에서 전라도 순천 송광사까지는 5시간 정도 걸리는 제법 먼 길이었다.

 

불일암은 송광사 우측계곡을  따라 제법 올라가서야 도착할 수 있었는데

 샘터사에서 처음 지어준 불일암 흑집은  낡아서 사람이 기거하지 않고 있었고 

지은지 얼마 안된 한옥이 

 넓지도 좁지도 않은 조붓한 마당을 끼고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엇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스님은 안계셨고 젊은 상좌스님이 한분 계셨었다.

미리 전언을 넣었기에 곧 오실거라 믿고 느긋이 불일암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불일암  마당은 책에서 보고 짐작한 그대로였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샘물과 후박나무 그리고 갖가지 책속 이야기들..

분명 초행길임에도 내겐 하나도 생경스럽지 않았다.

 시골 친척집에 오랫만에 들른 기분이랄까.

그렇게 익숙한 공간이었다.

 책에서 이미 마음으로 상상으로 먼저 가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시간 남짓 기다렸을까.

송광사에 볼일이 있어 늦었노라며  스님이 올라 오셨다.

 역시 초면 같지 않은 익숙한 모습과 담백한 말투 역시 예상대로 였다.

아니 책에서 보다 더 담백했다.

"온 김에 잡초좀 뽑아주고 가거라"시

우리를 불일암  뒷마당 채마밭으로 안내를 했다.

스님 초청법회 이야기는 잡초를 뽑으면서 나눈것으로 답사를 마친셈이다. 

茶는 그렇게 울력을 마치고 나서야 얻어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후에 스님이 대구로 오셨고 초청법회는 성황리에 끝났다.

 

 나는 스님을 딱 두번 뵈었다.

  두번이라도 인연이 있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한번도 만나지 않았더라도

책으로 이미 정신적인 공감이 가능했기에 

어찌보면 만남은 큰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생각해도  불일암하면 잡초 뽑은 기억만 난다. 

 법회날에는 법당이 터져 나갈만큼 사부대중이 많이 참석 했던터라

 스님의 육성을 듣는 기쁨은 있었지만

 책 한소절을 조용히 정독하는 것만 못한 아쉬움이 있기도 한 자리였었다.

 

어찌보면 만남은,

마음의 울림을 주는 만남은

정신적인 만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

좋은 책을 읽고 있으면 내 영혼에 불이 켜진다.

읽는 책을 통해서 사람이 달라진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항상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배우고 익히는 일에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독서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탐구의 지름길이다.

그 누구를 가릴 것 없이, 배우고 찾는 일을 멈추면 머리가 굳어진다.

머리가 굳어지면 삶에 생기와 탄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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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듯이 사람은 정신의 음식인 책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1년 365일을 책다운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삶은 이미 녹슬어 있다.

옛글에 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으면 젊어서 유익하다. 젊어서 책을 읽으면 늙어서 쇠하지 않는다.

 늙어서 책을 읽으면 죽어서 썩지 않는다."

 새해에는 마음 먹고 책 좀 읽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런 잔소리를 늘어놓은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 녹슬지 않는 삶 부분-법정

 

 

책이란 얼마나 좋은가!

내 맘대로 내가 원할 때 언제 어느곳에서든 맘껏 펼쳐볼 수 있으니,

어제 문득 스님이 왜 생각났는지 모르지만 반가웠다.

그리고 역시 나를 돌아볼수 있게 해주는 위안을 책속에서 만났다.

 책 덕분이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 혼탁해지는 자신을 보게 된다. 

분별심도 더러는 잃게 된다.

사람이기에...., 

 어리석을 수도 있고,

더러는 어리석은 줄 알지만,  어리석어지고 싶어 질 때도 있다.

자신을 잘 추스리며 사는 일이 어찌 어려운 일일까.

마음의 안정만 있다면 얼마든 가능한 일인것을

 

독서는  변함 없는 좋은 친구를 만나는 일이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내 곁에 있어주는 것. 

내게 맞는 좋은 사람,

 내 취향에 잘 맞는 그(작가)를 만나는 것이다. 

그는 나를 위로해 줄 것이며 내게 기쁨, 희망, 사랑도 준다.

그러면서 그를 닮고자 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생길수도 있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행복을 소망한다면 좋은 책읽기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철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좋은 차를 대하면,

한 잎 한 잎 정성을 다해 선별해서 만든 그 사람에게 저절로 고마운 생각이 든다.

만든 사람의 그 인품이 차 향기에 배어 있는 것 같다.

이런 차 맛을 두고 생각할 때 사람의 일도 또한 이와 같을 것 같다.

어떤 상황 아래서도 변덕을 부리지 않고

그가 지닌 인품과 인간미를 한결같이 이웃과 나눌 수 있다면

그는 만인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이웃이다.

이런 친구를 가까이 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 - 청소불공 부분 - 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