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詩語辭典(시어사전)-김재홍

구름뜰 2009. 6. 21. 16:51

   

우리가 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돈일까. 권력일까. 이념. 아니면 명예일까. 또 그도 아니면 사랑일까?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부족하면 삶이 불충분해 보이거나 살아가기가 불편하고,

없으면 세상살이가 아예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보다 삶에 있어 더 원천적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것은 밥과 말(글)이다.

밥이란, 생명, 또는 생활의 근본 에너지를 제공해주는 자원이자 동력 그자체이기에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밥을 먹지 않는 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밥(쌀)을 생산하는 터전으로서 땅(들)은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보듯이 농토로서의 먹이,

즉 생존권과 영토로서의 국가적 주권, 그리고 나아가서 민족혼의 상징으로서 중요성을 지닌다.

 

그렇지만 어디 밥 뿐이랴!

우리의 얼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말과 그 말을 담는 그릇으로서 글,

즉 언어도 밥과 똑같이 때로는 그 이상의 중요성과 가치를 지닌다.

언어는 정신적인 면에서의 밥이며 인격의 표징이자 혼이고 실존적인 존재 증명이다.

우리가 밥을 먹지 않으면 살아 갈 수 없듯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한시도 생활이 불가능하다.

 

언어가 곧 정신의 밥인데도

우리는 마치 공기와 물이 생존에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일상적이어서 그 중요성과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절감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 언어의 질량이란

바로 그 사람 삶의 질과 양을 반영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민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점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 나라의 말과 글을 갈고 닦아

소중히 아끼고 사랑해야 할 까닭과 당위성이 놓여진다.

 

 

시를 읽다보면 어감은 짐작이 되지만

정확히 뜻을 모르는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당연 국어사전에도 안나온다.

오래전 아는 교수님이 이런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게

<시어사전>이 있다고 알려 주셨다.

당시(2001년)로선 상당히 거금( 6만원)을 투자했지만

뿌듯한 기분은 역시 두고두고 값어치를 하는 책이다.

시에 관한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다

그리고 이책의 좋은점은 아무 단어라도 하나 예를 들어서

<나무> 라는 단어하나만 찾아도 나무와 관련된 명시들이

수편이나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주제별로 시를 즐길 수 있다.

또 반대로 주제는 같지만 이렇게 다르게 시를 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해주는 책이다

언어는 생존어, 생활어, 예술가어 세가지로 구분된다고 한다.

생존어는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경우의 말이고,

생활어는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하는 오늘날 우리말이 그 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 바로 예술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특히 인간에게 있어 가장 높은 정신의  움직임을 탐구하는 시와

그 곳에 쓰인 시어에서 보듯이 보다 높은 수준의 감수성과 인식 능력을 필요로 한다.

시어는 한 차원 높여진 정신과 예술적 감각및 예민한 감수성으로 쓰여진 것이기에

그에 대한 깊이 있는 해독과 향수를 위해서는

그만큼 훈련된 감각과 섬세한 지성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점에서 이 사전은 우리말이

생활어에서 예술어로 발전해가기 위한 하나의 시금석으로서 그 의미를 지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의 궁극적인 사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개인에게 있어서 자아를 발견하고,

자기를 극복하며,

자기를 실천하고,

나아가서 자기를 구원하는 길로서

정신의 초극을 통해 삶의 질을 고양하는 일에서 시작하여

사회적 삶, 역사적 삶으로 인식과 실천의 지평을 넓혀가고,

나아가서 민족어의 완성을 지향해 나아감으로써

민족 문화를 한 차원 높이는 일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한 단서이면서 동시에

그나라 민족의 예술 정신의 수준을 반여하는 한 척도라고 하겠다.

 

 

시를 읽고 싶은데 딱히 어떤시라고 생각나지 않을때

 한번씩은 다 읽은 시집을 다시 펼쳐보기는 그렇고 시가 그리울때

어떤 시를 읽어야 할까 그런 마음이 들때

 시어사전을 펴면 수많은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시어사전 하나만 펴고 앉아도 한참을 재미있게 놀 수 있다. 

우리나라 시어들로만 구성된

 순 우리것에 토종 우리말이 많이 수록 되어 있어

시뿐만 아니라 내겐 수필쓰기에 더 많은 도움을 준 책이다.

한장 한장 넘겨보는 사전읽기는 색다른 재미다

 

 

 

 시어 사전은 1970년대 중반 본인이  학위논문

<한용운문학연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상됐다. 

시집 [님의 침묵]에는 [기루다/ 슬치다/갈궁이/시쁜 도릉태]등

사전에 나오지 않는 어휘 및 특이한 용례들이 적지 않아서

의미를 정확하게 판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러한 개인 시어로서 조어, 방언, 고어, 은어, 비속어, 비유어, 상징어, 등

시에서 특수하게 쓰인 말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관심을 갖다 보니 육당, 소월, 상화, 지용, 영랑, 백석, 이용악은 물론

미당, 혜산, 고은, 신령림, 김지하, 송수권으로부터 박태일, 오봉옥 등

젊은 시인들에 이르기까지 뜻있는 시인들이 우리말의 조탁을 갈고 닦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그래서 학술원이나 예술원 또는 국어연구소나 정신문화연구원 등

국가 기관에서나 해야 하는 , 또 할 수 있는 거창한 작업을

여러모로 부족한 저자가 무모하게 시작하게 되었다.

더이상 미루어서는 안되는 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현대시어사전>이라는 제목으로 개인 차원에서 시어 사전을 기획하게 되었고,

시집을 읽고 자료를 수집하는 데만 10 여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이 경과하게 되었다.

 한국현대시 시어사전 (1908년 최남선에서 1995년까지)- 김재홍 

 

 

옛날 쫒기는 신세가 된 어떤도망자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친척접인가 남의 집 다락방에 숨어

목숨을 부지할 상황이 생겼는데

그 다락방에 백과사전인가 국어사전인지 옥편인지는 모르지만

무슨 사전이 있었고, 

 그가 그속에서 숨어 지내는 오랜 시간 동안 사전을 읽고 또 읽어

 혜안이 트여 박식한 이가 되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하도 오래되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글을 읽으면서 사전을 읽는 재미와 유익함을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는  다락방에서 제대로 진리탐구의 시간을 가졌던 행운아인 셈이다.

몸은 갇혀 있을지라도 책을 접하면서 정신의 나래는 활짝 펼쳤을 것이며,

 그가 다락방에서 내려 올때의 기분이 어땠을지.

짐작만 해도 미소가 번지는 이야기이다.

 

국어사전을 늘 곁에다 두고 지내는 것도 내 습관이다.

팔만 뻗으면 언제나 손에 잡히는 것이 국어사전이다.

신문이나  TV,  책 등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바로 펼쳐서 찾는다. 

곁에다 두고 보는 제일 큰 덕은 궁금증 해소가 바로되는 것이다.

또 국어사전이라고 해서 꼭 낱말뜻에 국한 된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라  

더욱 유익한 책이다.

그리고 시간나면 편김에 그 주변 단어들도 눈요기를 해 둔다.

펼친김에 비슷비슷한 발음과 뜻을 가진 주변단어를 훌터보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오늘도 주말오후를 뒹굴다가 詩도고프고  

시어사전에 <나>라는 단어를 어떻게 표기해 놓았을가. 궁금했다. 

자음에 제일 먼저 나오는 단어 <나>가 궁금해서 펴든 셈이다. 

사전에 나는 이렇게 적혀 있다.

<흔히 '나'는 자아발견에 따르는 자기 부정이나 자기 혐오데 대한 시적 대상이 된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자 할 때 인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는 존재의 자기 규정이 어려운 만큼

주로 구름, 바람, 새, 나무, 이슬 바위. 거울 등의 형상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나>가 궁금해서 찾아든 이 사전이 <나>에서 <나무>까지

나를 시의 세계로 안내한  셈이다. 

<나무>라는 단어에서 만난 시들은

그 예전 다락방 젊은이에 비할까마는

비그치고 청량한 주말오후에

뒹굴면서 탐독한 덕분에 만난 좋은 시들을 이곳에 올려본다. 

 

 

그 잎 뒤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부비며 나무는

소리내어 그의 피을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이 흔들리는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정현종 - 나무의 꿈>

 

 

가지에 피는 꽃이란 꽃들은

나무가 하는 사랑의 연습

떨어질 꽃들 떨어지고

이제 푸르른 잎새마다 저렇듯이 퍼렇게 사랑이 물들었으나

나무는 깊숙히 침묵하기 마련이오

 

불다 마는 것이 바람이라

시시로 부는 바람에 나무의 마음은 아하 안타까워

차라리 나무는 벼락을 쳐 달라하오

 

체념 속에 자라는 나무는 자꾸 퍼렇게 자라나기만 하고

 

참새 재작이는 고요한 아침이더니

오늘은

가는 비 내리는 오후

<장서언 -  나무>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

긴 추위를 견디어 내듯

 

나무가 맑은 하늘을 우르러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잎과 잎들이 가슴을 열고

고운 햇살을 받아 안듯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크듯

우리도 그렇게

클 일이다.

 

대지에 깊숙이 내린 뿌리로 사나운 태풍앞에 당당히 서듯

나무가 스스로 철을 분별할 줄을 알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꽃과 잎이 피고 질 때를

그 스스로 물러설 때를 알 듯

 <오세영 - 나무처럼>

 

나무라는 한 단어로도 이렇게 다양한 시들을 읽을 수 있다.

이 밖에도 나무시는 몇편 더 실려 있다.

시는 이렇게 풍요로움이며 정신적인 자양분이며

영혼을 치유해주며 위로해주는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