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행복

전복죽

구름뜰 2009. 7. 13. 09:52

 

 

 

고3인 작은 아이의 입맛이 자꾸 까다로워진다.

 

"맛있는 건 행복한 거야"는 녀석이 어릴적 부터 내세운 지론이다.

십여년도 훨씬 넘은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전이었던 것 같다.

대구외갓집 가는 길이었던 것 같은데 직행버스 안에서 였다.

차는 막 출발할려고 터미널에서 후진을 할 즈음이었다.

차안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아이의 손에는 주전부리 (정확히 무슨 음식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가 들려져 있었고,  

차에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막 그것을 먹는 순간,

 "엄마 맛있는게 있고 음악이 있고 이렇게 차를 타고 어디 가면 행복한것 같아!". 

그때 아이가 느끼는 감성이 얼마나 이쁘고 순수하던지..

 '맛있는 건 행복한 거야' 라는 이말이 정말 맞는 말이라는 걸

나는 아이를 통해서 제대로 안 셈이다.

그전에는 느꼈지만 그것이 행복까지라고는 생각못했는데

순수한 아이의 감성을 빌어서 나는 행복의 또 다른 맛도 찾은 셈이다. .

 

그런 미식가가 요즘은 먹고 싶은 것이 딱히 없는지 밥을 차려 주면,

"뭐 다른거 없냐"는 물음만 되풀이 된다.

그러던 녀석이 엇저녁 느즈막이 모처럼 생각났는지 내일 아침에는 전복죽을 해 달란다.  

 

 

쌀도 불려놓지 않고 잠든것은 새벽잠에서 깨고서야  생각이 났다.

엄마가 뭔지, 먹고 싶을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

월요일 아침이 바빴다. 

 

전복은 아주 깨끗이 손질해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물때가 낀것처럼 거무스름한 것들을 깨끗한 솔로 빡빡 문질러 흰살빛만 돌때까지 딱아 주어야 한다.

내장은 노랗거나 쑥색인것은 암수 구분하는 거라고 하는데 이것들은 버리지 말고 살과 분리해둔다.

(내장은 믹서기에 갈아서 쓰는 것보다 물을 한 컵정도 넣어서 손으로 조물락조물락하여

 쑥색물감빛이 돌때까지 풀어놓는다)

흰살은 잘게 썰어서 냄비에 참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달달 뽂는다. 

전복이 어느정도 볶아지면 불린쌀(찹쌀과 1:1로 하면 더 맛있다.)도 넣어 함께 볶는다.

이때 쌀만 넣고 남은 쌀뜨물은 버리지 말고 쌀이 어느정도 볶은 다음에 넣어준다. 

쌀뜨물은 잡내도 없애주고 구수한 맛이 돌게 한다.

쌀빛이 투명하게 약  80프로 정도 익었을때 내장푼물을 채에받혀 넣어준다.

이때부터 제대로 된 전복죽 색이 돈다.

뭉근하게 약한 불에서 오래 끓여야 죽은 제맛이 난다. 

 

 

죽은 정성이다.  

잠시도 불 곁을 떠나지 말고 저어주어야 하고 농도 조절도 신경쓰야 한다. 

'떨어진 입맛이라도 돋아날까' 하여 이쁘게 차려 줬건만

녀석 결국 반 그릇 정도만 먹고 학교 갔다.

입맛이 빨리 돌아와야 할텐데..

음식을 차리는 수고로움은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이 있으면 금새 잊는다.

'맛있는 행복'은 먹는이보다 요리하는 사람이 느끼는 행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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